[아론과 훌] 죽은 조상에게 추석 차례, 이제 생각해 볼 차례

등록날짜 [ 2018-09-28 13:19:41 ]

추석은 신라 시대에 베 짜는 일 장려하려고
두 패로 나누어 길쌈 대회를 한 데서 유래
제례를 중시하는 조선 시대 유학 영향으로
축제 성격 사라지고 조상 기리는 날로 변해

오랜만에 가족들 만나는 것 의미 있지만
죽은 조상을 기리는 행위가 중심 된다면
기독교인으로서 명절 의미 다시 생각해야


추석(秋夕)은 한자의 의미로 보면 ‘가을 저녁’이다. 가을 저녁이란 말이 명절의 뜻으로 붙은 것은 농경사회와 관계가 있다. 농경민족에 있어 봄여름 동안 가꾼 곡식과 과일을 수확하는 계절은 축제의 성격이 컸을 것이고 1년 중 가장 큰 보름달도 풍요와 다산의 기쁨을 상징한다. 한가위, 가배로도 불리는 추석은 한 해 농사를 잘하게 해 준 것을 감사하는 ‘농공감사일’이며, 달의 명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추석에 대한 명확한 자료와 문헌이 없기 때문에 정확히 언제부터 지금처럼 추석을 명절로 지냈는지 알 수는 없다. 현재 찾을 수 있는 것은 12세기(고려 시대)에 기록된 ‘삼국사기’에 나오는 간략한 기록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유리왕(儒理王) 9년에 베 짜는 일을 장려하기 위해 ‘가배(嘉俳)’라는 행사를 가졌다고 한다. 7월 15일부터 두 패로 나뉘어 길쌈을 하면서 8월 한가위까지 어느 편이 많이 짜는지 겨루어 적게 짠 쪽이 많이 짠 쪽에게 떡과 음식을 대접하면서 같이 놀이를 했다고 소개되어 있다. 신라 시대에 가배는 다분히 축제와 여흥 성격이 컸다. 특히 패를 나누어 길쌈을 했다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겨울 의복을 장만하는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신라 세시명절이었던 ‘추석’은 고려 시대에도 큰 명절로 계승되었고, 조선 시대에 와서는 설날, 한식, 단오와 더불어 4대 명절의 하나로 지켜진다. 조선 시대로 오면서 농경사회의 축제적 의미보다는 조상을 기리는 것으로 그 의미가 바뀌게 된다. 여기에는 제례(祭禮)와 가문을 중시하는 유학의 영향이 컸다. 오늘날은 전통적인 농경사회의 축제 성격은 완전히 퇴색되고 ‘차례’와 ‘성묘’를 하면서 가족 전체가 조상을 기리는 날로 그 의미가 완전히 변했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국가는 여전히 세시명절로 추석을 기리면서 은연중 조상숭배 전통을 계승할 것을 장려하고 있는 모양새다.

과학문명과 더불어 시대와 문화가 바뀌었지만 우리 의식과 삶에는 여전히 농경사회와 조선 시대의 유교적 전통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농사절기에 맞춰 사용되던 음력이 여전히 생일이나 명절에 사용되는 것이다. 설, 정월 대보름, 한식, 단오, 추석 등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기는 대표적 명절이며, 설날과 추석에는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물론 명절을 맞아 지친 몸을 쉬고 부모님과 만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추석에 가장 중요한 일이 죽은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것이라면 명절의 의미를 기독인으로서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기독교는 살아 있는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고 가족끼리 화목할 것을 가장 강조한다. 성묘를 가서 죽은 조상에게 절하고 유가적 전통을 민족적 전통처럼 포장하는 것은 4차 산업 시대의 정서와 새로운 공동체 문화에 맞지 않는다. 추석이나 설에 해외여행이 급증하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선진국 미국이나 유럽은 기독교와 관련된 명절이 많다. 부활절, 추수감사절, 독립기념일, 성탄절 등이 국가 차원에서 축하하는 명절이며 신년은 새로운 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음식을 나눈다. 선진국처럼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것으로 명절을 축하해야 하며, 국가와 민족 정체성을 굳건히 하는 생산적인 날로 기릴 필요가 있다. 당장 모든 명절을 미국처럼 기독교 명절로 바꾸자는 얘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미래 지향적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70년 전 전쟁 후 최빈국에서 세계 5대 공업국, 세계 6대 무역국이 되었다. 한반도 역사에서 처음으로 맞는 풍요지만 이 풍요로움을 우리가 지키지 못하고 우상숭배에 빠지면 다시금 일제 식민지 같은 시련이 닥쳐올 수도 있다. 하나님이 지키실 만한 값진 국가가 될 수 있도록 공휴일과 명절의 의미를 새롭게 만들 필요가 있다.



/정한영 안수집사
신문발행국




 

위 글은 교회신문 <59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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