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미·북 비핵화 협상 난기류··· 트럼프 “서두를 것 없다”

등록날짜 [ 2018-11-15 14:07:04 ]

미국 중간선거 개표가 한창 진행 중일 때 북한이 미·북 고위급 회담 연기를 미국에 갑자기 통보했다. 지난 5일 미 국무부가 8일에 회담을 열겠다고 발표한 뒤 6일 자정에 북한이 연기 통보를 한 것으로 외교 소식통은 전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미·북 양측의 일정이 맞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9일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으로 떠나야 해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미국에 가더라도 백악관 예방은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이 고려됐다. 미 국무부는 “일정이 허락하면 다시 회담 일정을 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단순한 일정 조율 문제 같지만 속을 더 들여다보면 미·북 간 협상이 꼬이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김영철은 아예 평양에서 출발하지도 않았고 7일 오후 베이징발 뉴욕행 비행편도 예약했지만 돈을 지불하지 않고 있다가 취소했다. 외교 소식통은 “김영철이 가려고 했으면 최소한 베이징까지는 갔을 법도 한데 안 갔다”고 했다. 숙소도 잡아 놓지 않아 처음부터 회담할 의지가 없었다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북한은 또 스티브 비건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지난달 말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기로 했던 비핵화 실무협상도 일방적으로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협상팀이 도착한 후에 북한이 연기 통보를 했다고 외교 소식통은 전했다.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와 이에 따른 상응조치, 제재 해제 문제에 이견을 좁히지 못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정황이다. 

 이면에서는 북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미국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인 38노스는 지난 2년간 위성사진을 분석해 북한이 최근까지 황해북도 평산의 우라늄 광산 시설을 계속 가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평산에는 북한 최대 우라늄 광산과 정련 정광시설이 있다. 38노스는 우라늄 정련 과정에서 나오는 폐기물이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천연 우라늄은 정련해서 핵발전소에서 태우면 연료봉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고 고속 원심분리기로 돌리면 고농축 우라늄을 만들 수 있다. 북한이 계속 핵무기를 만들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북한은 비핵화 약속을 뒤집을 수도 있다는 신호도 보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3일 외무성 미국 연구소장 명의의 논평에서 “미국이 태도변화를 보이지 않으면 경제 건설 총 집중 노선에 ‘병진’이라는 말이 다시 태어날 수 있고 이런 노선 변화가 심중하게 재고될 수 있다”고 했다. 병진은 핵·경제 병진 노선이다. 북한은 지난해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올 4월 핵·경제 병진 노선에서 경제 건설 집중 노선으로 변경했지만, 미국이 제재를 풀어주지 않으면 다시 핵개발에 나설 수 있다고 위협한 것이다. 경제 건설에 집중하겠다고 노선까지 변경했는데 제재가 풀리지 않으면 경제를 살릴 방법이 없다. 

 4월과 5월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6월 미·북 정상회담과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으로 추동한 북한 비핵화 협상이 미·북 고위급 회담을 통해 조만간 2차 미·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기대는 일단 접어야 할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도 2차 미·북 정상회담과 관련해 미 현지시각으로 지난 7일 “내년 초 언젠가”라며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다. 내년 1월 초 개최에 무게가 실렸다가 시기가 더 늦춰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은 급할 게 없다. 

 초조해지는 쪽은 북한이다. 제재가 유지된 채 시간만 흐르고 있다. 북한이 제재 해제를 줄기차게 요구하는 것은 그만큼 제재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과거 BDA 방코델타아시아사태 때 그랬다. 2005년 당시 북한은 미국의 금융 제재로 BDA 은행에 묶인 2500만 달러에 대해 대단히 아파하며 회담을 거부했고 핵과 미사일 실험으로 반발했다. BDA 은행 제재는 2007년 2.13 합의에 따라 미국이 북한 자금을 돌려주는 데 동의하며 끝났다. 당시에는 중국과 러시아의 중재가 사태 해결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지만, 지금은 중·러 모두 미국과 경제 전쟁 혹은 제재를 받고 있어 북한을 도와줄 처지가 못 된다. 문재인 정부가 대북 지원과 제재 해제에 발 벗고 나서고 있지만 지난번 문재인 대통령 유럽 순방에서 나타났듯이 대북 제재 해제를 외쳤다가 역효과만 냈다. 오히려 독일과 프랑스는 지금은 미국도 잘 사용하지 않는 CVID라는 용어를 써 가며 북한 비핵화를 압박했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은 대(對)이란 제재까지 부활시켜 이란 경제는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이란은 북한의 핵개발을 도운 나라이기에 이란 제재는 북한에게도 충격이다. 북한은 기댈 곳이 하나둘 없어지고 있다. 대북 지원에 나서는 한국 정부에도 미국의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미 중간선거 결과도 북한에 불리하다. 집권당이 거의 패배한 중간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상 승리한 데다,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어떤 면에서는 공화당보다 더 강경한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더 탄력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 정부는? 실리 위주의 획기적인 대북 정책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599호> 기사입니다.


이웅수 집사
KBS 보도국 기자
신문발행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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