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대한민국은 ‘빨리빨리 공화국’

등록날짜 [ 2018-11-19 15:22:48 ]

한국인의 ‘조급성’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
정치에도 독촉 입안 등 요구 많아
법 제도 바꾸는 것은 심도 있는 논의 필수적

현대는 개인 삶의 질이 더욱 강조되는 사회
‘빨리빨리’ 근성 떨치고 ‘숙려’ 자세 필요

신앙인도 하나님 대할 때 ‘조급’하지 말고
인내와 훈련을 통해 꾸준한 성장을 이뤄야
 
한국인의 ‘조급성’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해외유학한 사람들은 현지 학교나 관공서의 서류 업무가 늦거나, 인터넷 설치에 여러 날을 기다려야 하는 등 그곳의 느긋한 일 처리에 답답해하곤 한다. 현지 사람들은 한국인과 함께 있으면 ‘빨리빨리’를 제일 먼저 익힌다고 한다. 멀리 있는 한국인 친구 이름이 얼른 떠오르지 않으면 ‘빨리빨리’를 외쳐 댄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이쯤 되면 한국에 ‘빨리빨리 공화국’이라는 별칭을 붙여야 하지 않을까.

일상생활에서 늘 겪는 일인데, 엘리베이터를 탄 뒤 빨리 문을 닫으려 버튼을 누르거나 교차로에서 교통신호가 바뀌기 무섭게 뒤차 운전자가 경적을 울려 대는 경우는 누구나 겪어 봤을 터. 이같이 무엇이든지 빨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 국민의 조급성은 지구상에서 유별나다. 

‘빨리빨리’ 풍조는 정치 문화에서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예를 들면, 입안(立案)을 의뢰한 지 1~2일 내로 법안(法案)을 만들어 달라고 하거나, 심지어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 무슨 법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곧장 알려 달라’는 경우다. 하지만 번갯불에 콩 볶듯 단박에 답을 내놓기 어렵다. 통상 입안 의뢰를 받으면 현황 파악이나 시장 조사, 이해관계인 의견 청취 등 충분한 검토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 긴급한 사안이 아니고서는, 법 제도를 바꾸는 것은 충분한 시간과 심도 있는 검토 작업이 필수적이다. 한 번 시행되면 되돌리기 쉽지 않아서다. 졸속 처리할 때 시행착오나 부작용을 낳기도 하고, 조령모개(朝令暮改)식으로 자주 고치다 보면 법이 누더기가 되고 국민에게 혼란만 초래한다. 당장 눈에 보이는 실적을 의식해 단기간 결과물을 내야 하는 조급성 탓이 크다. 물론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곪아 터질 때까지 방치하라는 뜻은 아니다. 이 경우 신속하면서 물 샐 틈 없이 해야 한다. 하지만 빨리빨리 하면서 빈틈없이 할 수 있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고,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빨리빨리 하다가는 대충대충, 후딱후딱이라는 졸속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한국에 ‘빨리빨리’ 문화가 형성된 배경은 어디서 찾을까. 오랜 농경문화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곳에서 시기에 맞춰 모내기를 하고, 잡초를 제거하고, 수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흉작을 막으려면 기후 조건에도 민감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런 삶의 방식이 수천 년 쌓이면 ‘빨리빨리’가 몸에 배기 마련이다. 근현대에 들어와서 ‘빨리빨리’ 문화가 전 국민에게 자리 잡게 된 결정적 계기는 한국전쟁과 1960년대부터 시작된 개발정책이라고 한다. 생존이 위협받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전화(戰禍) 잿더미에서 나라를 다시 일으켜야 하는 등 거의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내려면 속도전이 주효했을 것이다. ‘빨리빨리’의 부작용은 논외로 하더라도, 초고속 압축성장이라는 경제발전을 이룬 자양분이 됐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빨리빨리’는 ‘역동성’이라는 순기능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수직적 성장보다는 개인 삶의 질이 강조되는 시대다. 좀 더 균형 있고 안정된 복지사회를 이끌려면 ‘빨리빨리’ 근성을 떨치고 차분히 ‘숙려’하는 마음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요구된다. 조급하게 졸속으로 취해진 일들이 부실을 야기하고, 안전을 위협하며, 불공정을 초래한 경우를 무수히 보지 않았던가.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타협의 과정을 거쳐 정책을 세우고, 이에 따른 시스템을 촘촘히 정비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는 민주주의 작동 원리와도 궤를 같이한다. 

우리 크리스천은 신앙생활에 매사 조급하고 허둥지둥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지 않은지 돌이켜 봤으면 한다. 건강한 신앙생활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병은 ‘조급증’이라는 말도 있다. 하나님을 대할 때, 특히 그분께 올리는 간구가 주님의 때를 기다리지 않고 나의 때를 정해 놓고 응답만을 재촉한다면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기도 응답에 앞서 나의 본분을 다하고 인내와 훈련을 통해 성장하기를 바라시지 않겠는가.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잠언 21:5).
 

위 글은 교회신문 <600호> 기사입니다.


문심명 집사
국회사무처 근무
29남전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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