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8-12-28 04:09:06 ]
산타·선물·축제·캐럴로 성탄절 인식되는 건
모든 걸 상품으로 변질시키는 소비사회 작품
1931년 미 코카콜라 회사가 불황 타개 위해
상징 색인 빨간색 옷에 자루 든 산타 창조
들뜬 축제 아니라 나를 위해 죽으러 오신
예수 생각하고 죄 회개하는 성탄절 맞아야
프랑스 사회학자이자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소비의 사회>라는 저서로 유명하다. ‘피로사회’ ‘정보사회’ ‘위험사회’ 등 현대 사회를 지칭하는 여러 단어가 있지만, ‘소비사회’처럼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을 적확히 드러내는 말도 없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소비사회는 소비를 많이 하는 사회가 아니다. 소비사회는 소비가 삶의 필수 존재방식이 되면서 사람들이 재화가 아니라 특정 기호(嗜好)를 소비하는 사회를 뜻한다.
예컨대 자동차는 교통수단이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신분을 보여 주는 상징처럼 받아들여지는데 이것이 기호의 소비다. 갈수록 모든 상품은 새로운 의미와 상징을 띠고 유통되는데, 이것이 문화에 의해 교묘하게 포장되는 것이 소비사회의 특징이다. 현대 사회는 모든 것을 소비와 연결하는 상업주의가 일상을 지배하면서 상품이 되지 말아야 할 것도 상품화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성(性)과 사랑, 문화와 예술, 오락과 여흥이 소비의 중요한 대상이 되고 있다.
소비사회에서 사람들은 ‘필요’가 아니라 ‘소비를 위한 소비’를 하면서 소비로 욕망을 표현한다. 그러면서 원래 그렇지 않았던 것이 그 의미를 상실하고 변질돼 엉뚱하게 바뀌는 일이 많다.
아마 소비사회에서 의미가 가장 심각하게 변질된 것이 바로 성탄절일 것이다. 12월이 되면 거리에 형형색색 장식등과 트리가 세워지고 성탄절과 관련한 여러 행사가 많아지면서 모두 들떠 지낸다. 하지만 정작 성탄절의 주인공은 예수가 아니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성탄절의 의미는, 선물과 바겐세일 그리고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는 산타와 신나는 캐럴이 분위기를 돋우는 ‘화이트 축제’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이 현상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기호화해서 상품으로 변질시키는 소비사회의 작품이다. 예수나 기독교와 아무 관계가 없는 산타는 원래 터키 지방의 가톨릭 성인 세인트 니콜라스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1931년 미국의 코카콜라 회사가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자사(自社) 상징 색인 빨간색 옷을 입히고 큰 자루를 든 산타클로스를 창조하면서 산타와 루돌프 사슴이 예수 대신 성탄절의 상징물로 자리를 잡았다. 코카콜라와 상업 자본주의가 요즘 크리스마스의 원조(元祖)인 셈이다.
성탄(聖誕)이 크리스마스로 바뀌면서 그 본래 취지가 퇴색하고 기독교 최대 명절이 세속화하는 경향이 심해진다. 성탄절은 원래 ‘예수’라는 이름이 뜻하듯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하기 위해 하나님이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날’이다. 그런데 오늘날 성탄절은 인간을 위하고, 상품을 소비하기 위한 축제로 변질했고, 연말 분위기에 편승한 성적(性的) 타락도 극심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일부 기독인은 마치 교회 명절이 세상 전체로 확대한 것처럼 좋아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성탄의 본래 의미를 되찾을 필요가 있다. 성탄이 뜻하는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사회에 전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사랑을 나눈다는 명목으로 선물을 나누고 즐기며 연휴 송년회의 절정처럼 술과 여흥으로 이 날을 보내는 것은 심각한 타락이기 때문이다.
소비사회는 교묘하게 인간의 의식과 문화를 소비 제일주의로 변질시킨다. 우리에게 익숙한 기호의 의미를 교묘하게 비틀고 왜곡해서 거기에 원래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소비문화를 트렌드처럼 주입해 나가는 의식화가 소비사회의 원동력이다. 소비사회는 광고와 미디어의 힘으로 만들어지고 확산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소비사회의 논리에 익숙해지고 소외되면서도 무비판적이 된다. 올겨울에는 세속의 미디어가 만드는 들뜬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나를 위해 죽으러 오신 예수를 생각하고 죄를 회개하는 뜻깊고 새로운 성탄절로 맞이하자.
위 글은 교회신문 <60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