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9-01-03 02:15:51 ]
지난해 살인사건 44%가 ‘분노 살인’
‘순간 욱해서 살인’ 매일 1건꼴로 발생
급하게 분노 발하면 마귀가 내 영혼 장악
화난다고 즉각적 감정 표현은 현명치 못해
새해엔 더 온유하고 남을 긍휼하게 여기며
인내심 잃지 말고 덕을 펼치는 삶 살기를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시37:8).
성경은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면 문제가 생긴다고 우려하고 있다. 분노가 폭발하면 심한 경우 폭력과 불상사로 이어진다. 앞차가 끼어들었다고 뒤차가 보복운전을 하거나 상대방 운전자를 폭행했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나온다. 12월 초에는 제주도 어느 병원에서 이중주차 문제로 시비가 붙어 상대차량을 무려 28차례나 들이받는 통에 피해차량 운전자가 크게 다친 사건도 있었다.
분노가 극단적으로 치달아 살인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몇 달 전 서울 강서구에서 발생한 PC방 살인사건과 전처 살인사건은 순간의 분노를 억누르지 못해 비극을 초래한 극단적 사례다. 특히 PC방 살인사건은 그 잔혹성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살인 범죄 44%가 분노로 말미암은 것이고, 이런 사건이 하루 1건꼴로 발생한다고 한다. 이른바 ‘분노 범죄’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각박한 현대사회의 해악이라는 점에서 다른 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총기난사로 무고한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 ‘묻지 마 살인’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이 역시 분노가 극단적으로 치달은 경우다.
분노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다고 해서 모두가 극단적인 행동까지 이르는 것은 아니지만 통제 불가능한 분노를 과도하게 표출한다면 그 정도와 형태에 따라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피해를 끼친다. 분노 조절 장애를 겪는 현대인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도 큰 문제다.
미국 심리학자인 존 레이테이는 “평범한 사람 중에서도 5명 중 1명이 통제 불가능한 분노를 경험한다”고 말했다(로널드 T.포터-에프론의 「욱하는 성질 죽이기」). 물론 미국 인구의 20%가 위와 같이 살인을 저지를 만큼 극단적 행동을 하지는 않겠지만, 많은 사람이 분노를 참지 못해 후회할 말이나 행동을 하고 있다. 통제 불가능한 분노를 반복하다 보면 인간관계에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화를 조절하지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욱하고 성질을 부린다면 스스로 평판을 갉아먹는다. 과격한 언동을 하거나 과도한 분노를 표출한다면 다른 이에게 정신적·육체적 피해를 준다. 직장생활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순간 조절하지 못하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값비싼 대가를 치르거나 비슷한 사례를 들어 본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즉각적인 감정 표출은 현명하지 못한 처세다. 잠시 시간을 갖거나 심호흡으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필요하면 나중에 대화로 차분히 푸는 것도 지혜로운 대처법일 수 있다.
급하게 분노를 발하면 마귀가 그 틈을 타 나의 영혼을 장악해 죄를 범하게 한다. 성경 속 가인은 하나님의 경고에도 아우 아벨에게 분노한 결과 살인을 저질러 파멸을 초래했다. 한편, 다윗과 사울은 분노를 처리함에 있어 극명하게 대비된다. 사울은 다윗을 시기해 분노를 품고 그를 계속 죽이려 한 반면, 다윗은 그런 사울을 두 번씩이나 죽일 절호의 기회가 있었는데도 하나님께 순종해 분노를 다스렸다.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려 땅바닥 위의 거친 돌무더기로 변해 버리는 건물처럼, 분노는 한순간에 자제심을 잃어버린다고 해서 ‘순간의 광기’라고 한다. 결점 많은 인간인지라 세상 살다 보면 광포한 분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을 늘 마음에 지닌 채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십자가 사건을 떠올린다면 감당 못할 분노는 없을 것이다. 새해에는 더 온유하고 남을 긍휼히 여기고 인내심을 잃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덕을 펼치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4:26~27).
위 글은 교회신문 <60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