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9-01-09 03:18:54 ]
유대인 학살자 아이히만 재판을 통해 본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따르면
악이란 인간의 본성이나 일상에 대해
부지불식간 모르고 지은 죄도 죄
새해엔 삶 속의 사소한 죄악도 경계하고
마귀 궤계에 맞서 선한 싸움으로 승리하길
죄악이 하늘에 닿을 정도여서 불과 유황 비로 심판을 당한 소돔과 고모라 얘기(창19:24)는 너무 유명해서 신자가 아닌 사람도 어느 정도는 알 것이다. 기독교인이라면 거기에 더해 아브라함이 그 성(城)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도했지만 결국 의인 10명이 없어 심판을 피하지 못한 사실도 알 것이다. 그런데 상상력을 조금 발휘해 보자.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전부 다 포악하고, 늘 범죄자나 깡패처럼 싸우고 서로에게 행패를 부리기만 했을까? 아마 거기에 사는 사람 중에서도 마음이 여리고 순진하거나, 적어도 가족이나 이웃에게 따뜻한 사람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 성을 악의 소굴로 단죄하고, 불 심판을 단행해 모든 생명을 멸했을까? 정치 철학자이자 유대인 ‘한나 아렌트’가 남긴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을 통해 답을 생각해 볼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친위대(SS) 중령이자 유대인 학살의 실무 책임자인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은 종전 후 신분을 감추고 아르헨티나에 숨어 살다가 이스라엘 첩보대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압송돼 재판을 받는다. 이때 아렌트는 미국의 잡지 특파원 자격으로 이 재판을 참관하고, 당시 목격한 기록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으로 출판한다.
아이히만은 친위대 고위 장교로 있는 동안 교묘한 방법으로 유대인의 재산을 빼앗고, 좀 더 효율적인 방식으로 유대인을 학살할 방법을 연구해 집행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아이히만이 포악한 성정(性情)을 가졌고 악이 가득한 괴물 같은 인간일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실제 그는 너무 평범했고 온순하기조차 했다. 아이히만의 정신 상태를 감정한 의사들도 그가 비정상적인 정신질환자가 아니고 오히려 준법정신이 투철한 모범 시민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법원이 유대인 학살의 책임을 추궁하자 아이히만은 군인으로서 국가가 내린 명령을 성실하게 이행한 것밖에 없다면서 자신이 저지른 죄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의 명령인 유대인 학살을 게을리할까 봐 조바심을 냈다고 한다.
아렌트는 살인 의무를 옹호하는 이 역설적 현상을 보면서 타인의 고통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도 도덕적으로 반성하지 않는 무능함과 맹목적 복종 태도가 아이히만의 문제라고 분석했다. 보통 악이나 죄를 너무 크게 생각하고 전형적으로 그리지만, 실은 아이히만처럼 평범한 사람들 속에 악이 깃든다는 것이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다. 예를 들어 아주 선량한 학생이 있다고 하자. 누구에게나 친절하지만 이 사람 주변에서 한 사람을 왕따 시키고 괴롭히는 것을 보고도 그는 안타까워만 할 뿐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 왕따 당한 사람이 어느 날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자살했다면, 그 죽음의 책임이 왕따를 가한 사람에게만 있겠는가?
악이란 이런 것이다. 우리가 인간의 본성이나 일상에 대해 별 고민하지 않고 아무 반성 없이 하는 행동이나, 부지불식간에 나 때문에 벌어진 비극적 일이 실은 더 심각하고 끔찍한 죄악일 수 있다. 소돔과 고모라의 일부 선량한 사람들도 의도치 않게 그 땅에 죄악이 창궐하는 데 일조했을 것이고 악한 행동을 방관하면서 죄의 공범 역할을 한 것이다. 성경은 인간이 그 마음에 생각하는 것이 늘 악하고,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경고한다(롬3:10). 살인, 사기, 강도 같은 큰 죄는 경계하고 두려워하지만 온순한 성품을 지녔고 성실한 사람들은 아이히만처럼 자신도 모르게 은밀히 죄악을 저지르기 쉽다. 새해에는 우리 삶에 숨어 있는 사소한 죄악을 경계하고, 악에 일조하지 않도록 기도하며, 교활한 마귀의 궤계에 맞서 선한 싸움을 할 필요가 있다. 모르고 지은 죄도 죄다.
위 글은 교회신문 <60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