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9-01-17 21:42:51 ]
김정은이 북·중 정상회담에서 2차 미·북 회담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북한은 비핵화 입장을 견지해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국제사회가 환영할 만한 성과를 내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일부에서는 김정은이 시진핑을 만나 지지를 확인했으니 이번에는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또 2차 회담이 열리면 김정은의 서울 방문도 가능할 것이라고 벌써 분위기를 띄우기도 한다. 미 트럼프 대통령과 두 번째 만나면 김정은은 핵무기와 핵시설 리스트를 제출하고 진정성을 가지고 비핵화에 나설 것인가?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까? 우리 정부의 입장은 현재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는 확고하다는 것이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북한 핵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에 걸친 세습 독재정권의 나름 피맺힌 결과물이다. 김일성은 자신이 저지른 6·25 전쟁에서 미국의 원자폭탄 위협에 떨었고 전쟁이 끝나기 전부터 핵 연구에 돌입했다. 소련으로부터 원자력 기술을 전수받고 60년대에는 3천여 명의 과학자들을 소련에 파견해 선진기술을 습득했다. 이를 기반으로 70년대에는 김일성대와 김책 공대 등에 핵 관련 학과를 설치하며 자체 연구개발능력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80년대에 들어서자 자신감이 붙은 김일성은 핵무기 개발에 본격 뛰어든다. 영변에 플루토늄 추출이 쉬운 흑연감속로를 설치해 무기급 핵물질 축적에도 열을 올렸다. 김일성은 동시에 스커드 등 단거리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미사일이 없는 핵무기는 거의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김일성이 쌓아놓은 토대를 바탕으로 김정일은 북한 핵과 미사일 기술을 한 단계 높였다. 플루토늄 외에 우라늄 폭탄까지 개발했고 무수단 등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나섰다. 또 1998년에는 대포동 미사일을 쏘아 올리며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개발의 기초를 놓았다. 김정은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이뤄놓은 성과를 토대로 지금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ICBM 개발을 거의 완료하고 2017년에는 국가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또 지난해 4월에는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핵 군축, 핵 선제 불사용 등 핵 정책을 발표하며 자칭 핵보유국의 길을 걷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90년대 초반 고난의 행군 때 주민 2, 3백만 명이 굶어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지금까지 수백억 달러를 들여 핵무기를 만들어왔다. 이렇게 70년 동안 3대에 걸쳐 모든 것을 쏟아 부은 ICBM 보유가 눈앞에 와 있는 것이다. 김일성·김정일이 살아있다면 감격의 눈물을 흘릴 일이다. 어떻게 이룬 이른바 핵보유국인데 이런 핵을 포기하라는 게 김정은에게 말이나 되겠는가? 김정은이 선대의 유훈을 포기할까?
더구나 지금 김정은이 의지할 만한 것은 핵무기밖에 없다. 재래식 군사력은 한미 연합군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공식적으로는 말 못 하지만 중국도 믿지 못할 상대다. 중국은 수천 년 동안 한반도를 침략해왔고 일제 만행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을 안겨준 나라이기 때문이다. 영토 야욕이 큰 중국은 북한에도 두려운 존재다. 이 때문에 김일성과 김정일은 핵과 생화학 무기 같은 비대칭 전력에 사활을 걸었다. 재래식 전력의 열세를 단번에 상쇄시키는 핵무기와 빈자의 핵무기라는 생화학 무기만 손에 쥐고 있으면 누구도 자신을 건드리지 못하리라 생각할 수 있다. 핵을 포기한 우크라이나, 핵무기 개발을 중도에 포기한 리비아 사례는 김정은에게는 반면교사다. 김정은에게는 미국의 체제보장이나 경제지원보다 핵미사일이 훨씬 강력하고 신뢰할 만한 정권 유지 수단이다. 북한을 싱가포르처럼 혹은 남한보다 더 잘 살게 해주겠다는 미국의 말은 김정은에게는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다. 혹시라도 북한 주민들이 정말로 잘살게 되고 의식주 걱정이 없어져 인권 문제 등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면 독재정권은 유지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가난하고 배가 고파야 통제가 쉽다. 지금은 무너진 국가 배급제야 말로 가장 핵심적인 독재정권 유지 수단이었다. 이러할 때 핵무기는 외부의 공격에 대한 보호막이 되고 내부적으로는 가장 효과적인 주민 통제수단이 된다.
핵무기는 또 김정은 세습 독재정권에 정통성까지 부여해주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어려움, 그리고 미래에 닥쳐올 모든 고난은 미국의 압살정책 때문이며 미국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만든 핵무기는 모든 것을 정당화시켜 준다. 독재정권에 대한 불만은 대미 적개심으로 돌려지고 핵무기는 독재정권의 긍지이자 자랑이 된다. 북한은 자신들의 핵무기를 ‘민족의 보검’이라고 부르고 있고 남한 일부에서조차 이러한 북한의 선전·선동에 부화뇌동하고 있다. 김정은이 이런 핵무기를 대화와 협상으로 포기하게 하는 일이 가능할까? 이렇게 말하면 그럼 전쟁을 하자는 거냐는 반박이 바로 튀어나온다. 대화가 아니면 전쟁밖에 없다는 생각도 위험하다. 전쟁이 아니더라도 김정은 정권을 변화시키거나 제거하는 길이 있다. 구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이 전쟁으로 붕괴한 것이 아니다. 대화와 협상, 강력한 제재와 군사적 압박, 인권 문제 제기, 외부 정보 유입 등 여러 가지 수단들을 복합적으로 동원해 김정은의 핵 포기를 유도해 가야 한다. 잘 달래면 김정은이 대화를 통해 스스로 깨달아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기대는 비현실적이며 위험하다.
위 글은 교회신문 <60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