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9-02-07 19:44:17 ]
최근 종영 드라마 속 상류층 자녀교육
‘계층 세습’의 통로로 전락한 교육 보여줘
자기에게 병적으로 집착하는 나르시시즘
자기과시욕 함정에 빠져 자녀 망칠 수도
“잘 태어나야 대학도 직장도 잘 간다”
상류·엘리트층 인성과 도덕의식도 문제
성공제일주의 아닌 주의 훈계 양육 절실
2월 1일 종영한 한 드라마가 요즘 큰 화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교육문제를 소재로 삼았을 뿐 아니라 최고 의대에 자식을 합격시키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상류층 사람들의 특권의식, 숨겨진 열등감, 파멸적 욕망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드라마 속성상 실제 현실보다 과장되고 자극적으로 연출했지만 우리나라 부모들이 자녀를 명문대에 진학시키려고 사교육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 일부 엄마들이 매니저처럼 자녀입시에 올인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필자는 드라마를 빌어 부모가 본인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부와 명예를 세습해주면서 자신들만의 성을 쌓으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얘기하고자 한다.
드라마는 대한민국 1%에 속하는 최고 상류층의 욕망을 그린다. 이들은 명문대를 나와 의사나 로스쿨 교수로 근무하면서 자신들의 특권과 차별성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친다. 하지만 이들의 인생목표는 자신이 아니라 자녀를 의대에 진학시키는 데 있으며, 이것을 자식사랑인 것처럼 신봉한다. 드라마에서는 부모의 과도한 욕심이 결국 자녀를 망가뜨리고, 마침내 최고 의대에 진학시키지만 자식에게 배신당해 자살하고 가정이 송두리째 붕괴되는 장면이 묘사된다. 나머지 인물들도 이를 목격해놓고도 내 자식은 다르다며 똑같은 전철을 밟고 부정한 짓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피라미드 정점을 향해 질주한다. 드라마처럼은 아니지만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어느 정도는 내 자식을 최고로 만들고 싶은 마음을 가진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자식에 대한 사랑이고, 가족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길일까?
자녀를 번뜻하게 키우고 자랑하려는 부모들은 나르시시즘(Narcissism) 함정에 빠지기 쉽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부모들이 어린 자녀에게 열광하면서 아이를 ‘작은 황제폐하’처럼 숭배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실은 부모의 나르시시즘이 투영된 결과라고 분석한다. 나르시시즘이란 자아를 사랑의 대상처럼 바라보면서 자기에게 병적으로 집착하는 자폐적 심리를 말한다. 어느 정도의 나르시시즘은 자존감을 주고 이상적인 것을 향해 긍정적인 힘을 발휘하게 해주지만 지나친 나르시시즘은 자기과시와 병적 집착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비극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나르시시즘의 유래가 된 그리스의 나르키소스는 우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황홀하게 바라보다 결국은 물에 빠져 죽는다. 자녀 인생을 그들 입장에서 보고 아이들이 자기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잣대와 평가에 맞추어 자녀를 특정 목표로 가게 다그친다면 실은 자신의 면류관을 위해 자식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또 하나 이 드라마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실제 우리나라 상류층이나 소수 엘리트들이 지니고 있는 인성과 도덕의식이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능력, 학벌, 스펙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소통능력과 공동체를 중시하는 도덕성이다. 인간은 관계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상류층일수록 이런 의무가 큰데 최상류층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 oblige)를 강조하는 것은 이런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재벌2세와 3세, 그리고 상류층 자녀들의 갑질이나 횡포가 계속되는 것은 우리 사회 엘리트들이 공동체의 지도자로서 책임감을 갖추고 솔선수범하기보다 특권계층으로서 자신들의 행복만 중시하도록 키워졌기 때문이다. 만약 내 자식이 엄청난 능력을 소유하고, 최고 학부를 나왔지만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산다면 자식을 잘 키웠다고 할 수 있을까? 자녀들을 성공제일주의가 아니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61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