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9-05-14 15:49:55 ]
미사일 발사 말고는 더 쓸 카드 없지만
중·러시아도 뒤 못 봐주는 것 알아야
트럼프는 자신의 시간을 재고 있을 것
북한이 5일 간격으로 미사일을 연거푸 두 차례나 쏘았다. 1년 5개월 동안 참았던 것을 한꺼번에 터뜨리듯 북한은 지난 4일 동해안 원산의 호도반도에서 240밀리 방사포, 300밀리 신형방사포, 그리고 신형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사진까지 공개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자 문재인 정부는 다급하게 대북 식량 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단호한 대응 대신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소집도 안 한 채 느닷없이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설령 식량 지원 계획이 있었다 하더라도 북한이 미사일을 쏜 마당에 이를 일단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게 마땅한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거꾸로 갔다. 하지만 이것도 김정은에게 묵살당했다. 문 대통령의 제안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다가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 KBS 특별 대담을 앞두고 또 미사일을 쏜 것이다. 식량 지원에 관심 없다는 이야기다. 이번에는 서쪽 평북 구성에서 2발을 쏘았다. 이 미사일들은 북한 내륙을 관통해 동해상으로 날아갔고 역시 방향만 틀면 서울과 대전, 또는 성주 사드 기지를 공격할 수 있다. 미국을 자극하자니 두려워 한국을 위협한 것이다.
김정은은 왜 이렇게 민감한 시기에 안보리 결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며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나? 김정은으로서는 지금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미국과의 하노이 노딜과 러시아와의 블라디보스토크 노딜 이후 김정은에게는 더 쓸 카드가 없다. 미 트럼프 대통령은 요지부동이고 중국과 러시아도 김정은을 도와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빨리 제재를 해제해서 달러와 기름이 들어와야 사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난데없이 식량을 지원하겠다고 나서니 김정은으로서는 짜증이 났을 수도 있다. 미국은 원칙적으로 인도적인 대북 식량지원에는 찬성하지만 쌀은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쌀은 북한군 군량미로 비축이 가능하고 중국에 되팔아 달러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북 식량지원도 옥수수가 가장 적당하다. 김정은에게 옥수수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비핵화 협상으로 불만 가득한 군부와 흔들리는 충성 계층의 동요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전쟁 분위기를 띄우는 것밖에 김정은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없어 보인다.
또 한 가지는 중국 배후설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최근 이번 북한의 신형 미사일 발사는 중국이 승인했으며 중국은 10일 미국과의 무역 협상을 앞두고 북한을 이용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려 했다고 보도했다. 다시 말해 북한이 계속 미사일을 발사해 트럼프 대통령을 곤란하게 만듦으로써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이를 간파한 트럼프 대통령이 4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자 5일 트위터를 통해 갑자기 중국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며 무역 전쟁을 재점화했다는 설명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중국 측의 합의 파기였지만 이면에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의미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중국과 북한이 합작해 위기를 만들어 중국은 무역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북한은 제재 해제를 노렸다가 역효과를 낸 것이다.
하지만 정작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 강경한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미 상·하원은 강경 대응을 주문하고 있지만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비핵화 약속을 어기지 않을 것이라며 여전히 김정은을 믿어주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되면 제재 해제를 독촉하기 위해 김정은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만약 김정은이 오판해 ICBM까지 발사한다면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폭의 명분만 쌓아주게 될 것이다. 김정은은 지금 과거 김정일이 벼랑 끝 전술을 쓰던 때와는 판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김정일 때는 중국과 러시아가 배후에서 북한의 뒤를 봐주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한·미·일을 위협하며 온갖 도발을 감행해도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을 막아주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한반도 주변에는 미국 말고도 영국과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 등 7개 나라 해군과 공군 전력이 합동작전을 펼치고 있다. 북폭은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중국의 군사력은 이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이란과 베네수엘라 사태를 동시에 다루고 있는 미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시간을 재고 있을 것이다. 김정은은 한 발만 잘못 내딛어도 죽을 수 있다.
/이웅수 집사
KBS 보도국 기자
신문발행국 논설위원
위 글은 교회신문 <62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