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인지 편향 시대와 진리

등록날짜 [ 2019-06-01 12:50:32 ]

어떤 사태 둘러싸고 논쟁 잦아지는 것은
내 가치관에 부합하는 것만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안 믿는 인지 편향 때문
거짓말의 변형이자 악의 동조에 맞서
믿는 자들이라도 진리가 서도록 싸워야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총체적으로 불신이 난무해서 진리를 찾기 힘든 시대가 됐다. 똑같은 사태를 보고 서로 다른 얘기를 하면서 내 말이 맞고 상대는 거짓말을 하거나 잘못된 판단을 한다고 싸우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사태를 직접 보고 들으면 참과 거짓을 밝힐 수 있는 것 같지만, 미디어 과잉 시대에는 같은 사건을 목격하고도 서로 다른 얘기를 하는 일이 많다.

예컨대 지난 5월 초 서울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촉발된 여성 경찰 논쟁이 대표적이다. 음식점에서 난동을 부린 취객 때문에 출동한 여경이 취객의 폭력을 제압하지 못하고 주변 시민에게 도움을 청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비난이 쏟아지면서 여경 폐지론이 인터넷을 달궜다. 여경이 예전보다 많이 늘었지만 과격한 업무에 여자 경찰이 무능하니 여경을 아예 뽑지 말라는 비난이 들끓은 것이다. 결국 진실을 가린다고 경찰청에서 CCTV 전체를 공개해 여경의 대처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공식해명을 했다. 많은 전문가도 이를 확인해 주었지만, 사람들이 믿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비슷한 일이 최근 잦은데 사건 현장을 찍은 비디오 영상을 공개해도 진실이 엇갈리는 경우가 언론에 자주 보도된다.

최근에는 우리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의 전화 통화 기록이 유출되면서 한쪽에서는 국가기밀 누설로 국익에 큰 손해를 끼쳤다고 비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굴욕외교를 폭로한 공익제보라고 맞서면서 정치권이 사납다. 이를 보는 국민도 정치적 입장이나 관점에 따라 사건 당사자를 비판하기도 하고 옹호하기도 한다. 국가 정무나 외교에는 정치적 입장이 작용하기 때문에 다른 얘기를 한다고 할 수 있지만, 문제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중립적 사안에도 참과 거짓을 다투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불신 풍조가 커지고, 어떤 사태를 둘러싸고 논쟁이 잦아지는 것은 우리 사회에 인지 편향이 만연하고, 자기 이익과 방어를 위해 합리화를 쉽게 하고, 거짓에 대한 경계심과 비난이 무뎌졌기 때문이다. 인지 편향이란, 특정한 시각이나 관점에 경도돼 사태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비논리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다. 인지 편향은 특수한 조건에서 대상을 잘못 파악하는 착각과 달리, 판단자의 신념이나 무의식적 동기가 작용한다. 예를 들어, 내 가치관에 부합하는 자료나 정보는 참으로 받아들여 믿지만, 그것에 위배되는 정보는 배척하는 인지 부조화나 내가 좋아하는 것만 보려고 하는 선택적 지각의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인지 편향에 빠진 사람은 사태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최근 유튜브가 널리 퍼지면서 사람들이 수동적으로 정보를 접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정보나 뉴스만 골라 접할 수 있는 미디어 환경이 조성된 것도 인지 편향을 부추긴다. 인지 편향 문제는 그릇된 판단을 초래할 뿐 아니라 진실은 불가능하다는 회의주의를 부추겨서 결국 사회 전체에 불신 풍조를 만연시키고 서로서로 적대시하게 만드는 폐해를 가져온다. 인지 편향 때문에 사회갈등도 커진다. 양치기 소년의 우화가 얘기해 주는 것처럼 가짜뉴스가 창궐하고 불신풍조가 만연하면, 최후에는 공적인 제도, 법, 도덕의 권위가 떨어지고 각자 자기 이익만 극한으로 추구하면서 싸우는 전쟁 상태가 되면서 사회 자체가 붕괴할 수 있다.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는 것”(요8:44)이 마귀의 특징이다. 인지 편향은 거짓말의 변형이자 악에 동조하는 행위다. 믿는 자들이라도 이런 사태를 경계하고 거짓에 맞서 진리가 설 수 있도록 싸워야 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627호> 기사입니다.


김석 집사
現 건국대 철학과 교수 철학박사(프랑스 현대철학)
신문발행국 논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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