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9-06-17 13:47:32 ]
미·중 틈에 낀 한국 그야말로 진퇴양난
동맹이냐 명분이냐 실리냐 해법 놓고
솔로몬의 지혜 그 어느 때보다 필요
미·중 무역 전쟁이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관세 폭탄을 주고받더니 최근에는 중국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를 둘러싸고 기술전쟁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이로 말미암아 세계 경제가 또다시 격랑에 빠져들고, 관련 기업들은 그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실정이다. 미국은 동맹국들에 화웨이와 거래를 끊으라고 하고, 이런 압박에 유럽 국가 등 일부 선진국들은 화웨이와 거래 중단을 선언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위치와 막대한 대중국 교역 규모를 고려하면 섣불리 행동할 수 없는 입장이다. 반도체 같은 첨단기술 분야에서 화웨이와 대규모 거래 관계를 맺고 있어 국내 주요 기업들은 그야말로 진퇴양난인 셈이다.
최근 들어 중국 당국은 우리나라가 미국에 동조하지 못하도록 으름장을 놓았다.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하면 ‘심각한 결과’에 직면할 것을 각오하라는 경고였다. 화웨이가 사들이는 한국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규모만 해도 연간 12조 원에 달하는 만큼, 거래 중단 시 중국 보복에 더해 그 파급력은 상당하리라 예상된다. 과거 한바탕 홍역을 치른 ‘사드 보복사태’가 2차 방정식이었다면 화웨이 사태는 여러 변수가 얽히고설킨 고차 방정식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화웨이를 집중적으로 제재하려는 이유는 ‘안보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위험한 기업’으로 인식해서다. 화웨이는 올해 들어 스마트폰 분야에서 애플을 제치고 5G 통신장비 1위 기업으로 치고 올라왔다. 다른 나라 기업의 첨단기술을 거리낌 없이 훔치거나 베껴 이뤄 낸 성과라는 비난이 일고 있고, 미국의 동맹국들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화웨이 제재에 동참하고 있다.
미국이 화웨이를 제재해 중국의 진격을 봉쇄하려 하자, 중국은 희토류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희토류는 전자기기와 전기자동차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원료다. 중국은 희토류 매장량 세계 1위 국가이고, 미국은 희토류 수입의 80%를 중국에 의존한다. 과거 중국은 일본과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 영토 분쟁 당시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중단해 백기를 들게 한 바 있다. 희토류 수출 중단에 깜짝 놀란 일본은 물론, 다른 국가들까지 희토류 공급 다변화에 적극 나섰다. 중국이 미국에 대한 보복으로 희토류 카드를 작심하고 꺼내 들면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보겠지만, 길게 보면 중국에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기술 패권을 둘러싼 미·중 무역 전쟁은 예견된 충돌이라는 견해가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중국이 미국 중심의 기존 질서를 깨고 경제 패권을 빼앗으려 한다는 공포감이 미국에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은 1970년대 후반 개혁개방을 추진해 세계 경제 2위로 올라선 데 이어 2030년경 미국 경제 추월을 가시화하고 있다고 하니, 미국이 우려할 만도 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몽(中國夢, 위대한 중화 부흥)을 선언하고 그 수단으로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 중국 주도의 내륙과 해상의 실크로드 경제벨트) 건설에 나서자, 트럼프 미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칼을 뽑아 든 것이 미·중 무역 전쟁이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투키디데스의 함정’(신흥세력이 지배세력의 자리를 빼앗으려 위협해올 때 극심한 긴장이 발생하는 현상)을 거론하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투키디데스는 『필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신흥강국으로 올라선 아테네가 당시 패권국인 스파르타에 도전하면서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합종연횡하며 대규모 전쟁을 벌였고, 그 결과 그리스 전체가 쇠락했다고 지적한 데서 나온 말이다. 기존 패권국인 미국이 신흥 경제 대국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는 시각에서 보면, 미·중 갈등이 지속할 경우 결국 당사국은 물론 관련 국가들에 미칠 영향이 어떨지 시사하는 바 있다.
격화하는 미·중 무역 갈등에 우리나라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마냥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당장 해법을 찾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역내 안보와 경제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일방적으로 한쪽 편을 들기 곤란한 구조에서 일각에서는 동맹의 우선 원칙 위에 ‘전략적 모호성’ 기조를 절묘하게 유지해 나갈 것을 권고한다. 미·중 패권 경쟁에서 어느 한쪽을 반드시 선택해야 할 시점이 다가온다면 접근법은 ‘명분’이 아니라 ‘실리’에 바탕을 둬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모쪼록 강대국의 무역 전쟁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지 않게 위정자를 포함한 국민 모두에게 솔로몬의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기라 하겠다.
위 글은 교회신문 <62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