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9-07-03 14:04:00 ]
미중 무역 분쟁이 격화되고 있는 지금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될 대변혁의 순간이다. 과거 이런 때가 세 번 있었다. 모두 미국의 달러가 전 세계에 통용되는 유일한 돈, 즉 ‘기축통화(基軸通貨)’로서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게임의 룰(rule)을 바꾼 변혁의 역사들이다.
#1. 1971년 미국 닉슨 대통령은 금과 달러의 교환을 정지하는 이른바 ‘금본위(金本位)제 폐지’를 선언한다. 그 이전까지는 각 나라의 중앙은행은 돈을 찍어 내는 만큼 금을 보관했지만, 돈 찍어내는 양을 금 모으는 양에 연동시키기에는 경제규모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후 미국은 자국이 만들어 내는 부가가치보다 훨씬 많은 돈을 찍어 내고도 끄떡없었고 오히려 달러를 거둬들이면 세계 경제가 무너지는 패권을 확실히 거머쥐게 된다. 달러 가치는 금값보다 폭락하지만, 이는 자산가격의 급등을 의미하고 실제로 인플레이션의 시대는 미국에 대호황을 가져다준다.
#2. 1985년 9월 미국은 뉴욕 플라자호텔에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의 재무장관을 불러 G5 재무장관 ‘플라자 합의’를 끌어낸다. 타깃은 일본과 독일이었다. 두 나라가 2차 대전 패전국이면서도 기술력과 성실성으로 제조업을 잠식해 가자 미국은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강세를 일방적으로 정해 버렸다. 당시 엔화 가치는 달러당 260엔 선이었지만 불과 10년이 안 돼 달러당 100엔까지 치솟는다. 엔화 가치가 치솟자 제조업은 그만큼 비싸진 제품가격 때문에 원가경쟁력이 약해져 해외로 빠져나간다.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에서 버블현상이 나타났다가 초장기 붕괴가 시작된다. 일본 정부는 판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 잃어버린 30년을 보내고 만다.
#3. 2003년 9월 미국은 ‘두바이 G7 합의’를 통해 유로화 강세를 촉발한다. 2002년 1월 실물 유로화 출범 당시 ‘1달러=1유로’로 맞추어 유럽연합 국가들의 통화가치를 각각 계산해 통합했다. 이후 달러당 0.8유로대까지 가치가 하락하면서 유로존 제조업에는 수출에 유리한 상황이 전개됐으나, 두바이 G7 회담을 기점으로 미국의 강력한 ‘달러 약세·유로화 강세’ 요구대로 장기 강세로 반전되었다. 이후 유로존은 아무리 금리를 낮추고 심지어 마이너스 금리라는 극약처방까지 쓰면서 돈을 풀어도 달러보다 비싼 돈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포르투갈(P), 이탈리아(I), 아일랜드(I), 그리스(G), 스페인(S) 등 이른바 ‘PIGS 국가’ 등의 파산 위기가 불거져도 유로화는 달러보다 비싼 돈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기축통화라는 돈을 찍어 내는 패권국가 미국의 힘이다. 룰은 기축통화국이 정하며 이를 위반하면 은행과 기업은 경제제재를 받고 문을 닫게 된다. 중국은 미국 트럼프에게 항변한다. “좌충우돌하는 당신의 이상한 성격이 무역협상을 막판에 뒤집었잖소? 우리는 정직하고 투명하오.” 그러자 트럼프 측은 말한다. “중국 본토에서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다 막아 놓고 아마존, 이베이, 텔레그램을 비롯한 다른 나라 메신저나 앱스토어, 넷플릭스 사이트 차단해서 중국 기업이 독점하게 하는 게 자유무역인가?”
이제 중국의 선택 시간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실크로드를 부활시켜 항공·해상권을 가진 미국의 패권을 흔들고 중국이 중심이 되는 중화(中華)를 위(爲)한,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도 미국에 대한 정면 도전인 만큼 시범케이스로 타깃이 된 화웨이(華爲)는 어려운 국면에 처했다. 모든 금융기관은 달러 거래가 불가피하므로 이란과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위반하면 FBI 수사를 받는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현재 중국교통은행, 중국초상은행, 상하이푸둥발전은행(SPDB) 세 곳이 대북제재 위반과 관련해 법정소환에 불응해 법정모독죄를 적용받았고 이중 SPDB가 제재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향후 달러거래 중지, 천문학적인 과징금 등을 의미해서 제재(sanction)를 받을 징후만으로도 예금자와 투자자는 신속히 자금을 뺄 수밖에 없다. 이를 뱅크런(bank run)이라 하는데 이때 파산하지 않을 금융기관은 없다. 실제로 김정일 자금세탁에 관여한 마카오은행도 파산했고 국내 모 은행이 대북제재의 엄중함을 잘 모르고 대북거래를 검토하다 식겁한 사례도 있다.
늦어도 올해 4분기까지 미·중 무역협상이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일본, 유럽연합과 달리 미국의 맹방이 아니다. 게다가 장기집권을 위한 시진핑의 통치에 도전하는 세력까지 등장하는 와중에 개방 압력 수용도 쉽지 않다. 또 현재 약 3천억 달러인 외환보유고도 충분하다고만 할 수 없다. 외국투자자들이 좀 더 눈치채면 신용위험은 도미노처럼 확산할 수 있고 이미 준국영기업도 부도가 꽤 났다. 시장을 열고 외부 투자자들이 자유롭게 들어와 외환보유고가 늘게 하고, 엔화처럼 위안화도 강세로 만들어 중국도 개방된 큰 내수시장이 되게 해 주는 길뿐이다.
미국의 기축통화 패권을 사용한 4번째 게임 체인지는 중국과 북한의 결박을 푸는 것과 상당히 관련 깊다. 북한과 중국이 아무리 만나고 편지를 꾸며도 눈 하나 꿈쩍 않는 미국. 룰은 미국이 정하고 시한은 이제 문턱에 왔다.
위 글은 교회신문 <63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