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9-10-04 17:24:22 ]
전략이라는 게 보이질 않는다. 급조된 한미정상회담을 빌미로 미북 간 비핵화 실무협상에 끼어들어 조국 사태 국면 전환을 노릴 것이라는 예상에서 현 정부는 벗어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국정원은 예상대로 남북관계에 또 희망사항을 띄워 올렸다. 문 대통령은 뉴욕 현지 시간 24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평화경제’와 ‘판문점-개성 평화협력지구’를 이야기했다. 거의 동시에 국정원장은 24일 국회 정보위에서 김정은이 11월에 부산을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자신들이 보기에도 이런 제안들의 비현실성을 무시하기가 어려웠는지 ‘북핵 협상에서의 진전’을 전제조건으로 내걸긴 했다. 문제는 전제조건이 거의 실현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최종건 청와대 평화정책비서관은 지난 19일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협력 방안을 협의한다”고 말했다. 완곡하게 포장했지만 문 대통령은 이번에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북 제재 완화와 북한 체제 보장을 요구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없었다.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는 입도 뻥끗 못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비핵화의 ‘새 방법’도 나오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노련했다. 북한의 잠재력이 엄청나다고 현란하게 치켜세우면서도 비핵화를 해야 잠재력이 실현 가능하다고 못을 박았다. 문 대통령에게 끼어들 틈을 주지 않은 것이다.
알맹이 없는 회담이 될 줄 알았을 텐데 트럼프 대통령은 왜 문 대통령을 만나 주었을까? 문 대통령이 내놓은 어마어마한 선물 보따리 때문이었다. 한국가스공사는 현지 시간으로 23일 뉴욕에서 BP사와 2025년부터 15년 동안 총 96억 달러어치 미국산 LNG를 구매하는 장기계약을 체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방문 기회에 미국 LNG에 대한 한국의 추가 수입 결정이 이뤄지고, 한국 자동차업계와 미국 자율운행 기업 간 합작투자가 이뤄지게 됐다고 했다. 지난 4월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단 2분 단독정상회담을 하고 10억 달러어치 미국산 무기 구매라는 선물 보따리를 안겨 주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대북 퍼주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 미국에도 퍼주기를 하고 왔다. 그러고도 빈손으로 돌아왔다. 더 굴욕적인 이야기도 있다. 문 대통령 내외는 이번에 처음으로 태극기 배지까지 달고 갔다고 한다. 하지만 공항에는 미국 측 인사가 한 명도 영접 나오지 않았고 문 대통령이 탄 차도 보안요원이 타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예전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이런 대우는 받지 않았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청와대는 연내 3차 북미정상회담 가시권에 들었다며 분위기를 띄우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반대로 미북 실무협상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며 차분하고 냉정했다. 실무협상 결과가 좋지 않으면 김정은을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뒤집어 말한 것이다. 여기에 앞서 지난 호에서도 지적했지만 김정은은 비핵화할 생각이 전혀 없다. 3차 미북정상회담은커녕 실무협상도 기대할 게 없다는 의미다. 김정은 답방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김정은이 서울이든 부산이든 오게 하려면 대가가 있어야 한다. 달러가 급한 북한은 돈을 주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 때도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을 만나기 위해 수억 달러를 송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지금 문 대통령을 극도로 기피하는 김정은을 오게 하려면 그때보다 더 천문학적인 대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수십억 달러를 달라고 할지도 모른다. 미국이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이게 가능할까? 그것도 국민 세금으로?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김정은 답방설을 또 퍼뜨리고 있다. 많은 전문가가 이에 대해 내년 총선을 이야기한다. 총선이 7개월 정도 남은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조국 사태를 뒤엎고 민심을 일거에 반전시킬 카드로는 김정은 답방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하지만 김정은은 오지 않을뿐더러 올 수도 없다. 그러면 어차피 못 올 바에야 올 것 같은 분위기라도 잡자는 속셈인가? 이제 김정은 답방설은 꺼내지 않았으면 한다. 김정일부터 김정은까지 벌써 몇 번째인가?
한미정상회담에 관심이 쏠린 사이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 크리스토퍼 레이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비밀리에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갔는데 시기가 미묘하다. 문 대통령 출국일에 들어왔다가 귀국 전에 돌아갔다. FBI 국장의 방한은 20년 만이라는데 문 대통령을 피한 의도가 역력해 보인다. 레이 국장은 민갑룡 경찰청장과 윤석열 검찰총장을 만나고 갔다. 미 FBI 국장의 이런 행보는 그 자체로 던지는 메시지가 무겁다. 한미정상회담 와중에 FBI 국장이 한국에 와 조국 사태를 수사하고 있는 사법기관 수장을 만나고 돌아간 의도는 무엇일까? 둘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오갔을까? 밤잠 못 이룰 사람이 더 많아지게 됐다.
위 글은 교회신문 <64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