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악은 평범함 속에서 시작된다

등록날짜 [ 2019-10-08 17:44:43 ]

화성 연쇄살인범 같은 유형이 사이코패스

언젠가 숨김없이 본색 드러내는 이들보다

일탈 반복하거나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비정상으로 특혜 누리는 사람들이 더 문제


화성 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이 아무개가 마침내 자신의 범행을 시인했다고 한다. 그는 1994년 1월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해 유기한 혐의로 구속기소 돼 현재 교도소에서 무기수로 복역 중이다. 영구 미제로 남을 뻔한 사건이 첨단 DNA 수사에 의해 해결되고, 자백까지 받아낸 단계에 왔으니 천만다행이다. 공소시효 만료로 법적으로 단죄하거나 추가 처벌을 할 수는 없지만 범죄 진실이라도 온전히 밝혀내어 피해자 가족을 위로하고 범죄자들에게 교훈을 주기를 기대한다. 언론에 보도된 사건의 주요 장면을 보면 그가 얼마나 잔인하고, 짐승 같은 범죄를 저질렀는지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끔찍하다. 심리학자들은 이 아무개 같은 유형을 보통 사이코패스(psychopath)로 정의한다. 사이코패스는 생물학적 요인이나 환경적 원인에 의해 강한 공격성과 잔혹함을 드러내고, 타인의 고통이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해 범죄 행동을 주저 없이 저지를 수 있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증을 앓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 이들은 때로 치밀하게 자신을 위장하고 계산적으로 행동하면서 목적을 위해 사람을 수시로 속이거나 재미로 악을 저지를 수 있는 무서운 자들이다.


인격 장애라고 해서 깡패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연상하면 안 되며, 정치인이나 학자, 고위직 엘리트 중에서도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사람이 많은데, 히틀러가 전형이다. 일반인처럼 위장한 채 지능적으로 범죄 행각을 벌이는 자들을 소시오패스(sociopath)라고 구분하기도 하지만 본질에는 크게 차이가 없다. 이들은 힘의 역학 관계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자신보다 약하거나 처벌 위험이 없으면 잔인한 행동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데 사이코패스에게는 범죄도 일종의 게임처럼 흥분을 준다. 이런 성향 때문에 범죄 행동을 절대 멈출 수 없는 게 특징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면서 트집을 잡고 온갖 논쟁으로 복음을 방해하는 바리새인들을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요8:44)라고 단죄한다. 지금 용어로 보면 바리새인들은 사이코패스라고 할 수 있다. 사이코패스는 우리 주변에 숨어 선량한(?) 이웃처럼 살기 때문에 구분이 어렵다. 실제로 화성 살인범의 경우도 이웃이나 가족조차 그가 범인임을 뒤늦게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사이코패스 성향 행동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그것이 은연중 우리 주변에서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연쇄살인 같은 극단적 범죄엔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지만, 일상에서 교묘히 악을 행하거나 도덕성을 짓밟으면서 사회를 병들게 하는 문제아는 잘 보이지 않는다. 조심할 것은 마치 사이코패스를 정상인과 전혀 다른 인간처럼 구분하면서 우리 주변의 소소한 악은 무시하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엔 자신의 본색을 언젠가 숨김없이 드러내는 사이코패스보다 작은 부분에서 일탈을 반복하거나 거짓과 기만을 통해 특정 목적을 달성하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더 심각하다. 사회지도층으로 행세하면서 온갖 부정을 저지르고 비정상적으로 특혜를 누리는 사람들, 거리낌 없이 갑질을 하거나 약자를 짓밟는 기업인들, 필요하면 거짓말이나 연기를 주저 없이 하면서 자신의 편의를 도모하는 사람들, 거짓 선동이나 사이버 폭력을 장난처럼 하면서 재미있어하는 네티즌들, 지하철에서 죄책감 없이 성적 일탈을 즐기는 보통 직장인들의 악행이 결국 화성 연쇄살인범 같은 악마를 낳는 원천이다. 악은 늘 평범함 속에서 시작된다.



위 글은 교회신문 <644호> 기사입니다.


김석 집사
現 건국대 철학과 교수 철학박사(프랑스 현대철학)
신문발행국 논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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