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보수와 진보의 갈등 그리고 그리스도인

등록날짜 [ 2019-10-23 17:58:12 ]

프랑스 혁명 당시 변화를 원하는 좌측에

기존 질서 원하면 우측 앉은 데서 유래

작금의 보수-진보의 반목 바람직하지 않아

성도는 주님 심정 아우르는 시각이 바람직


‘보수’와 ‘진보’에 관한 담론(談論)만큼이나 치열한 논쟁을 초래하는 분야도 없을 것이다. 보수와 진보는 도대체 무엇이고 그 차이는 어떠하며 어디서 유래했을까.


우선 보수와 진보를 둘러싸고 있는 ‘이데올로기’를 살펴봐야 한다. 이데올로기(이념)는 “무엇이 적합한 사회질서이고, 그것을 어떻게 이룩할지에 대한 일련의 믿음”으로 정의된다. 이데올로기와 관련해 기본적으로 거론하는 점은 “현 질서를 유지할 것이냐, 아니면 바꿀 것이냐”다. 18세기 후반 프랑스 혁명 당시 의회에 모인 각계 대표는 기존 질서 유지를 원하면 ‘우측’에, 변화를 원하면 ‘좌측’에 각각 앉았다. 이때부터 ‘우’(右)와 ‘좌’(左)는 각각 보수와 진보를 의미하는 말이 됐다(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


이런 연유에서 현대 정치에 와서는 이념 추구와 정책 지향에 따라 보수(우파)는 정부 개입을 줄이는 가운데 자유, 성장,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는 반면, 진보(좌파)는 정부 개입을 확대해 평등, 분배,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우리 사회에 보수와 진보는 공존하고 있고, 사회를 주도하는 양대 축임을 부인할 수 없다. 정치 영역에서는 보수와 진보 진영이 이념 가치 실현을 위해 정당을 매개로 해서 서로 견제하거나 경쟁하고, 타협하거나 절충하며 부단히 상호작용을 한다. 그러나 양 진영은 정치 성향이 다르다 보니 갈등과 대립 관계가 극심하고 소모적 당파 투쟁으로 치닫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원래 ‘당파성’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조선 시대에는 명분과 실리, 관념과 실용, 보수와 개혁에 대한 입장차에 따라 당파(黨派)를 지어 정사(政事)를 도모하는 ‘붕당(朋黨)정치’를 펼쳤다. 붕당정치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 덕분에 조선 500년 역사를 지속시키고 현대 정치 토양의 밑거름이 된 측면도 다소 있다고 본다. 하지만 당시 잦은 파벌 싸움과 정쟁(政爭)이 극단으로 치달아 각종 사화(士禍, 신하와 선비들이 정치적 반대파에게 몰려 참혹한 화를 입던 일)를 초래하고 나라가 혼란해진 부작용이 컸던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현대 국가에서는 보수와 진보 간 정쟁이 아무리 심해도 전제적 봉건시대처럼 상대를 숙청하거나 끝장을 보는 파국 단계에 이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념과 정책 지향에 방해가 되는 상대측을 흠집 내고 볼썽사나운 갈등이나 대결 국면으로 치닫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과도한 당파성에 기인한 정쟁은 어느 국가에서든지 그 구성원에게 정치 혐오를 낳고 사회의 응집력을 떨어트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미국만 보더라도, 중산층 몰락이 원인이 돼 1990년대부터 정치권의 분위기가 바뀌면서 과도한 당파성을 띠기 시작했다. 이로 말미암아 양당 정치의 퇴보가 야기되고, 장기적으로는 세계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염려가 일어 보수와 진보의 분열을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미국 사회에서 나오고 있다. 근래 우리나라도 보수와 진보의 반목이 커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회 통합의 에너지를 소진할 뿐 아니라 더 좋은 국가, 더 좋은 사회를 이룩하는 데도 도움 되지 않는다. 건강한 보수와 건강한 진보로 발돋움하여 건설적인 견제와 경쟁, 대승적인 양보와 타협을 통한 화합 정치를 모색해 나가야 한다.


한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어떤 자세를 견지해야 할까? 세상 이념의 프레임을 기준으로 구분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한자로 보수(保守)는 ‘보존하여 지킴’이고, 진보(進步)는 ‘나아가는 걸음’이라는 순수한 의미를 고려해야 하고, 성경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말씀의 권위 아래 우리가 이 세상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점, 신약시대에 ‘예수가 행한 믿음의 도(道)’, 그리고 우리가 품어야 할 ‘예수의 마음’(빌2:5)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보수와 진보의 가치를 아우르는 시각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위 글은 교회신문 <646호> 기사입니다.


문심명 집사
국회사무처 근무
29남전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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