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9-12-19 12:56:59 ]
‘죽은 이가 1년간 다른 사람 몸에 머문다’는
귀신 존재를 믿는 아일랜드 축제에서 유래
오늘날에는 오락적 성격이 더 강하지만
천국·지옥과 다른 사후 세계 전제가 문제
해마다 10월 마지막 주가 되면 서울 이태원이나 홍대 쪽에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다양한 인물이 나타난다. 좀비나 귀신처럼 꾸미거나 마블 영화와 애니메이션 캐릭터 복장을 하고 몰려다니며 춤을 추고 공연을 보기도 한다. 가끔 호박 모양 등불을 들고 다니는 이들도 있다. 요즘 한국에서 퍼지고 있는 핼러윈 데이(Holloween Day) 모습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크리스마스 때마다 떠들썩하게 연말 분위기를 냈는데, 갈수록 핼러윈이 새로운 유행처럼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핼러윈은 미국 축제로 알려져 있는데 젊은이들 사이에서 점점 우리 축제처럼 자리를 잡으며 새로운 문화현상이 되고 있다. 이를 단순히 즐기는 문화현상으로 볼 수 있지만 유래와 기원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정이 좀 복잡하다.
핼러윈은 미국 전통 축제가 아니라, 아일랜드에 살던 켈트족의 전통 축제인 삼하인(samhain)에서 유래했다. 켈트족은 11월 1일부터 새해를 시작하는 독특한 달력을 사용했는데 새해 전날인 10월 31일이 가장 특별한 날이다.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1년 동안 다른 사람 몸에 머물다가 사후 세계로 간다고 믿었는데, 새해 전날 죽은 자들이 자신이 거주할 새로운 집(사람의 몸)을 찾는다고 생각했다. 귀신을 쫓아내고 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귀신처럼 분장하고 밤에 놀았는데, 이것이 삼하인 축제다.
로마가 켈트족을 정복하자 아일랜드 땅에도 로마 기독교가 들어왔다. 교황이 11월 1일을 ‘모든 성인(聖人)의 날’로 정하고 10월 31일을 ‘모든 성인의 날 전야(All Hallow’ Even(ing)’로 지정해 축하했다. 성인을 뜻하는 ‘hallow’에서 핼러윈이 유래한것 이다. 이후 아일랜드인이 미국으로 이민해 축제를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미국 명절처럼 정착하게 됐다. 이처럼 핼러윈의 기원을 보면 켈트족의 귀신사상과 가톨릭의 성인(聖人) 축성 문화가 교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 입장에서 볼 때 핼러윈 데이의 문제점은 뭘까?
첫째, 켈트족 삼하인 축제에서 보듯 핼러윈은 죽은 자 혹은 귀신과 연관이 있다. 죽은 이가 1년 동안 이 세상에 머물면서 사람들을 괴롭힌다고 믿고 스스로 귀신처럼 꾸며서 귀신을 속이려는 축제가 핼러윈 복장의 유래다. 물론 오늘날에는 오락적 성격이 더 강하지만, 연원을 보면 귀신 존재를 믿으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이나 지옥’과 다른 사후 세계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중세까지 서양인들은 질병, 자연재해, 정신장애를 귀신 장난으로 간주하거나 귀신과 사귀는 마녀 탓으로 돌렸다.
귀신을 쫓아내는 의식은 우리나라에서도 행해졌는데, 나례(儺禮)라는 풍습이 그것이다. 섣달그믐에 탈을 쓰고 귀신을 쫓는 의식을 행했는데, 고려 시대에 중국에서 들여와 조선 시대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동지(冬至)에 붉은 팥죽을 먹는 것도 이날 밤이 길어 귀신의 활동이 왕성하다고 생각해 귀신을 쫓으려는 목적이다. 붉은색이 음기(陰氣)을 누르는 양기(陽氣)를 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네 옛날 사람들이 두려워한 귀신은 성경이 말하는 사탄이나 마귀가 아니라 막연하게 상상되고 인간에게 항상 영향을 미치는 초자연적 존재를 말한다.
핼러윈에 볼 수 있는, 기괴한 모양의 호박 등(燈)을 ‘잭-오-랜턴(Jack-o-lantern)’이라고 부르는데 이것도 귀신과 관련 있다. 아일랜드 전설에 따르면, 욕심쟁이 잭이 죽어 천국도 지옥도 못 가고 떠도는 신세가 되자, 악마에게 자신을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악마가 지옥에 있는 불덩이를 던져 주었고 이것을 잭이 호박에 담아 들고 다니며 쉴 곳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떠도는 혼령의 길잡이가 바로 호박 등불인 셈이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65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