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전염병보다 무서운 혐오와 과잉반응

등록날짜 [ 2020-02-05 15:22:06 ]

전염병보다 더 확산되는 중국 혐오 분위기

중국인·중국 동포 싸잡아 바라보는 시선

이는 사회 자체를 병들게 하는 암적 감정

위기 순간엔 감정보다 냉정한 해결책 절실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어머니가 마스크를 꼭 하고, 사람 많은 곳을 피하라고 걱정스레 말씀하신다. 지하철에도 많은 사람이 하얀 마스크를 쓰고 있다. 공공기관에서 개최하는 사업설명회에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바이러스 확산을 우려해 취소되었다고 문자가 온다. 누군가 공공장소에서 심한 기침이라도 하면 눈살을 찌푸리고 도망간다는 기사까지 보고 나니 신종 전염병 공포가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 같다. 이런 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던 나도 주변에서 관련 이야기를 들으니 괜히 신경이 쓰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뾰족한 치료 수단이 없고 체력이 좋은 젊은이들도 걸리면 죽는다니 사람들 우려를 이해할 수는 있다.


인류 역사는전염병과 그 정복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고, 그에 얽힌 일화도 많다. 보카치오의 유명한 단편소설 『데카메론』도 창궐하는 페스트를 피해 교외로 피신한 남녀 10명이 하루 1개씩 돌아가며 구술한 이야기를 모아 놓은 작품이다. 잃어버린 수수께끼의 도시 마추픽추를 만든 잉카제국의 갑작스러운 멸망도 유럽인의 침략보다 실은 유럽인에 의해 전파된 신종 바이러스 감염이 결정타라는 설이 강력하다. 중세 때 흑사병은 너무 많은 사람을 몰살해 흉흉한 민심을 달래느라 마녀사냥이 벌어지기도 했다.


백신과 의학 발전으로 천연두, 콜레라 같은 많은 병이 정복되었지만 가까운 기억만 더듬어도 스페인 독감, 사스, 메르스 등이 주는 공포와 야단법석은 중세인들만큼 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우한(武漢)’에서 건너왔다고 중국 당국은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도시를 완전히 봉쇄했고, 세계적으로 우한뿐 아니라 중국인들 자체를 꺼리고 혐오하는 편견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필자는 급성 전염병보다 정서적으로 확산하는 혐오와 과잉반응이 더 우려스럽다. 인간에게는 생존에 대한 절실함과 목숨을 위협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 육체적 방어기제가 발달했는데 낯선 외국인에 대한 경계심도 그와 연관된 현상이다. 하지만 호들갑이 지나치면 문제와 갈등을 일으킨다.


혐오와 미움을 혼동하는 사람이 많지만 전혀 다르다. 미움은 속에 애정의 감정을 깔고 있는 양면적 서운함에 가깝고, 대상도 나와 대등하거나 더 강한 대상을 향한 감정이다. 한때 좋아하던 사람이나 미련이 있는 사람에게 서운함과 미움을 느끼지, 전혀 상관없는 제삼자에게는 미움이 발동할 수 없다. 불륜을 저지른 애인이나 자기를 괴롭히는 직장 상사에 대한 미움이 그런 예다.


하지만 혐오는 철저하게 파괴적 감정이고 불안감과 생존에 대한 공포가 나와 단절된 약자에게 전가되는 경우다. 예를 들어, 바퀴벌레를 볼 때 순간적으로 느끼는 불쾌감과 소름은 혐오이고, 미움처럼 대상에 대한 연민의 감정으로 전환될 일은 전혀 없다. 미움이 관계를 전제한다면 혐오는 그 대상이 완전히 없어졌으면 하는 배타적 감정이다.


그런데 최근 혐오는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집단으로 표출되거나 특정한 성(), 민족, 계층에게 표현되는 경우가 빈발해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고 중국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중국 동포들을 싸잡아 벌레처럼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도 문제고, 이참에 아예 중국과 단절해야 한다고 과장된 화풀이를 하는 일부 여론도 지나치다.


혐오 심리를 뜯어보면 근거가 없거나 과장된 경우도 많고, 혐오의 표출 자체가 극단의 부정적 감정을 남긴다. 외국인뿐 아니라 장애인, 노인, 여성을 혐오하는 일이 다양한 층위로 확장되면서 범죄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이것은 결국 사회 자체를 병들게 하는 암적 감정이다. 혐오 사회에서는 누구나 불안할 수밖에 없다. 지금 같은 위기의 순간에는 더 냉정하게 해결책을 찾으면서 합리적으로 이 난국을 극복해야 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661호> 기사입니다.


김석 집사
現 건국대 철학과 교수 철학박사(프랑스 현대철학)
신문발행국 논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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