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0-02-18 21:51:34 ]
1월 초, 미국 뉴욕 출장을 다녀왔다. 마침 감사하게도 유럽에서 유학 중인 딸이 뉴욕에서 연주 스케줄이 있어 만나게 됐다. 딸의 일정이 바빠 링컨센터 앞에서 잠시 점심을 함께할 틈을 얻었다. 식사를 하려고 딸과 함께 길을 걸어가는데 한 아주머니가 내 면전에 대고 나지막하나 또렷이 말한다. “fucking foreigners!(×× 외국인들!)” 순간 귀를 의심했지만 너무나 분명하게 욕설을 들었기에 “뭐라고 한 거죠?”라고 되물으며 돌아서는데, 딸아이가 그냥 가자고 소매를 잡아끈다. 식당 테이블에 앉아서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오랜만에 이국땅에서 딸아이를 만난 기쁨도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씩씩거리고 있는데 딸아이가 달래듯 말한다.
“아빠, 나는 차라리 저렇게 대놓고 당하는 차별이 덜 기분 나빠요. 외국 생활을 하다 보면, 겉으로는 아닌 것 같은데 실제로는 은근히 외국인이나 인종을 차별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데요.” 필자보다 어른스러운 딸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딸은 나름 잘나가는 연주자다. 카네기홀에도 두 번이나 섰고, 세계 3대 페스티벌에 초대됐고, 최근에는 가장 유명하다는 말보로 음악제(Marlboro Music Festival, 차세대 유망주들이 펼치는 실내음악축제)에 향후 3년간 초청받은 연주가인데도 이런 차별이 익숙하다고 한다.
사실 필자도 오래전부터 묘한 차별을 못 느낀 건 아니다. 그래서 과거 삼성에 근무할 때는 “from SAMSUNG”이라고 소개하기 바빴고,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얕보이지 않으려고 의상이나 액세서리에 신경을 썼고, 글로벌 ‘큰손’의 지위를 활용하려 들었다. 그런데 뉴욕 같은 친숙한 국제도시 한복판에서 딸아이와 함께 겪은 수모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 공포 앞에서 바이러스보다 더 무섭게 퍼져 가는 차별과 편견을 보면서 주님이 알려 주신 회개의 제목을 고백하고 싶다. 필자는 브랜드, 의상, 액세서리로 차별을 피하고 대우받으려 한 만큼, 마음 한편에서 그런 것들을 갖지 않은 사람들을 속으로 차별한 죄를 지은 것이다. 우리 교회 오케스트라 리허설 중에는 아무리 정숙해 달라고 간청해도 소란스러운 찬양 대원들을 보면서 ‘여기는 구로구라 어쩔 수 없나 봐’라고 근거 없는 편견을 가졌던 일도 고백하고 회개한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무려 31번 이상 반복해 말씀하신다. “공평과 정의를 행하여 탈취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렘22:3). 공평과 정의를 말할 때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례가 과부, 고아, 나그네(이방인)다. 가장 차별받기 쉬운 약한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고 후의(厚意)를 베푸는 것이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제사를 드림보다 기쁘게 여기신다고 강조한다(잠21:3).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않은 것이 주님께 하지 않은 악함이요,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간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마25:45).
과거 백인들이 흑인 노예를 매질할 때 “예수는 흑인이 아니다”라며 때렸다고 한다. 그런다고 양심이 자유를 얻었을까? 흑인을 못 들어오게 한 교회에 하나님이 계셨을까? 우리가 교회를 소독·방역하고 일부 교인에게 귀가 조처를 함은 혹여 발생할지 모를 교회 폐쇄를 미리 막고자 함이지 사람의 신분·국적·인종 차별이 아니다. 우리 주위의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을 차별하기 위함도 아니다. 우리 교회는 전 세계 77억 인구를 품고 기도하고 에이즈 보균율이 살인적인 나라에도 복음을 전하려 구령 열정 갖고 가서 성회를 열지 않았던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동영상 하나(하단 참고)를 공유하면서 고통당하는 중국 형제들을 위해 채찍 맞으신 그리스도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자.
언젠가 마귀는 자기가 선동해 차별이 팽배해진 이 세상을 두고 딴청 부리듯 말할 것이다. “그래서 법을 만들어 차별을 금지해야 해.” 그러면서 여론을 차별금지법 통과로 이끌어 갈 것이다. 그 칼끝은 구원이 예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알고 있는 복음을 붙든 자들을 겨눌 것이다.
기독교인은 예수를 알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복음 전하다 죽을지언정,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남을 죽인 적 없는 사람들인데도 말도 안 되는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씌울 것이다. 그러기에 복음 전파를 막는 차별금지법은 절대로 반대하되, 차별 없이 사랑하고 편견 없이 이웃에게 복음 전하는 일은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것이다.
동영상
http://youtu.be/TR0Ss2iR5hE
위 글은 교회신문 <66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