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0-03-10 14:27:17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안이나 낙관 아닌
어려움 속에서 평범함을 되찾으려는 노력
어려워도 강하고 담대한 것이 믿음의 증표
코로나19 여파가 수그러들지 않고 감염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집단 우울증 정서도 안개처럼 퍼지고 있다. 불안감이 증폭되는 것은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보다 일상이 깨지고 불확실한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막연함 때문이다. 이건 공포라기보다는 불안심리로, 둘은 구별된다. 확실한 대상이 있고,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어본능에 가깝게 반응하는 것이 공포라면, 실체를 알 수 없고 두려움의 대상도 불확실한 정서가 불안이다. 예를 들어, 늑대가 쫓아오면 공포가 생기지만, 저 멀리서 오는 게 늑대인지 개인지 구별되지 않을 때 온몸을 휘감는 감정이 불안이다. 지금 형국도 비슷한데 불안의 가장 큰 피해는 일상이 깨지면서 모든 것이 위축되는 무기력증이다.
새내기의 활력과 새 학기 기운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캠퍼스가 텅 비어 있고, 건물은 낮 동안에 관계자들에게만 개방된다. 개학은 2주이상 연기되고 그나마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하지만, 3월이 돼도 언제 대학이 정상화될 수 있을지 모르니 사람들 얼굴이 다 어둡다. 행사나 모임이 취소되는 것은 물론이고, 누군가에게 식사라도 하자고 선뜻 제안하기가 멋쩍어지는 게 요즘이다. 구슬픈, 왠지 모르게 우울한 상황이 계속되자 소소해 보이고 따분해 보이는 일상이 실은 얼마나 소중한지 다들 절실하게 느끼는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사람들 만나 식사하고, 주어진 일을 하다 가끔 수다도 떨고 낮잠과 여가도 즐기는 게 일상인데 이것은 지루함이 아니라 큰 근심이나 문제가 없는 평안한 상태다. 평범한 것이 더 어렵다는 말처럼 일상이 지속되는 것은 저절로 주어지는 비범함이나 단순함이 아니라 축복이고 감사한 은총이다. 그러나 상황이 늘 좋을 수는 없기에 특히 어려운 상황에서 일관되게 일상의 리듬과 기분을 잃지 않으려면 멘탈이 강해야 한다. 상황에 지나치게 일희일비하면서 민감하게 군다는 것은 상황에 지배당한다는 뜻이고, 심리적으로 유약하다는 증거다.
지금처럼 모든 게 불확실해 보일 때 오히려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새로운 깨달음이 필요하고,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불안을 떨치기 위해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바이러스 공포에 굴복해 의기소침하거나 번뇌와 불안에 사로잡혀 절망하고 분노하는 것은 삶을 사랑하지 못하는 태도다. 또 막연하게 어떤 희망을 품거나 근거 없이 낙관론을 펼치는 것도 파멸적 태도가 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상황에서 포로가 되거나 아우슈비츠 같은 극한 장소에 갇혀 자연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두 가지 유형이다. 하나는 절망적 상황이 언제 끝나 석방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의 두려움 때문에 심약해지거나, 절망적 상태가 돼 퇴행적으로 과거 기억에 몰두하면서 심약해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미래에 대한 기대나 삶의 의욕 없이 절망하다 병에 맥없이 무너진다. 다른 부류는 특히 성탄절이나 새해가 다가오면 특사(特赦) 등으로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희망을 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기 기대가 좌절될 때 오는 절망감을 이겨 내지 못하고 무너진다.
지옥처럼 고통스러운 수용소에서 살아남는 사람들은 절망하거나 낙관하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어려운 조건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상황이 우리를 어렵게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가 절망의 구렁텅이에 스스로 빠지는 것이다. 지금의 사태도 비슷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안이나 무조건적 낙관이 아니라 평범함을 되찾으려는 노력이다. 일상의 회복과 감사가 최선의 치유다. 어려운 상황에서 강하고 담대한 것이 믿음의 증표다. 이것은 믿는 자들의 특권이기도 하다.
위 글은 교회신문 <66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