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1-03-04 11:04:26 ]
미국은 COVID19 사태 이후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약 5조 달러, 평균환율로 봤을 때 우리나라 돈으로 약 5570조 원을 재난지원금으로 풀었다. 미국 GDP가 약 20.5조 달러이니 GDP의 24.4%다. 지난해 미국은 -3.5%로 역성장을 했으니 번 것 없이 엄청난 재정지출을 한 셈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31조 원을 재난지원금으로 풀었고 이는 GDP 약 1800조 원의 1.7% 수준이니 미국에 비해 경미하고 더 지원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고 단순히 비교해서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달러는 오늘날 전 세계 모든 나라가 교역을 위해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교환매개체이자 자국의 부를 저장하기 위한 보존수단이다. 미국과 불편한 관계인 중국조차 달러로 ‘외환보유고’를 발표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1998년 외환위기 때 달러 보유고가 고갈돼 온 나라가 ‘IMF사태’를 겪은 바 있을 만큼 달러는 소위 ‘기축통화’, 즉 전 세계 통화의 근본적인 축이 되는 통화이기에 어지간히 찍어내도 군사력·기술력·경제력·문화적 영향력을 지닌 미국 달러화의 신뢰가 흔들리지 않는다. 그다음으로 달러만큼은 아니지만 유로화와 일본의 엔화도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안전통화’ 범주에 포함된다.
반면 우리나라의 원화는 OECD 국가에 들어가고 최근 G7국가 그룹에도 진입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지만 여전히 ‘안전통화’와는 거리가 있고 오히려 금융시장이 요동을 칠 때마다 제3세계 국가들과 맥을 같이함이 현실이다. 때문에 한국은 원화의 신뢰를 끝없이 입증해 주기 위해 ▲경상수지 흑자, 즉 우리나라가 돈을 벌고 있는 나라라는 것 ▲재정건전성, 즉 우리 정부의 위기 대처능력이 충분하다는 것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안보유지가 중요하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이를 교훈삼아 재발방지에 노력을 기울였다. 지나치게 원화가치가 올라가면 우리 수출이 타격을 입고 국민들의 해외여행과 해외수입이 늘어 경상수지가 나빠지며,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대규모 이익실현을 기회 삼아 빠져나갈 수 있으므로 이를 조절하려 했고, 원화강세를 기회 삼아 달러를 사들여 외환보유고를 늘리는 데 썼다. 그 결과가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통화안전증권, 일명 ‘통안채’의 증가다. 반대로 원화가치가 지나치게 떨어지면 달러를 풀어 시중에 달러가 돌게 하고 국제금융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충분한 달러결제능력이 있음을 어필했다.
최근 한국은행이 안전통화국인 미국이나 일본이 하는 것처럼 증권을 사들여 그 재원으로 재난지원금을 더 풀어내라며 정부여당 일각이 압력을 가하는 모습이 우려스럽다. 지금은 미국이 돈을 풀고 달러화 약세를 만들어 전 세계 주식시장을 활기차게 만드는 것이 현재의 살인적인 고실업 사태를 돌파하는 유일한 돌파구다. 풀린 돈이 부동산과 사치품 가격을 올린 것 같지만 오히려 돈 값이 떨어진 것을 눈치채기 시작하면서 금리도 빠르게 오르고 달러약세를 기반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해외에 투자를 풀었던 외국투자자들은 본격적인 수확을 시작할 수 있다.
만일 이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미국처럼 ‘프린팅머니(printing money)’를 이미 해놓은 상황이라면 환율의 상승속도는 지금 급증한 정부부채와 맞물려 매우 빠를 것이다. 이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악몽’이나 충분히 개연성이 있어서 한국은행은 어떠한 정치적 목적에도 이용될 수 없도록 독립성을 보장받고 통화 이머징 국가라는 특수성을 명심해 국가경제의 안정을 위한 버팀목 역할을 해놓은 것인데, 현재 정부와 여당 일각에서 한국은행이 국채매입을 하고 이를 재난지원금을 쓰자는 압력은 위험한 발상이다.
우리나라 국가부채는 올해 말 1000조, GDP 50%에 육박하지만 이는 명목상이고 IMF나 정부가 포함시키지 않는 부실기업들을 안고 가며 세금으로 운영되는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의 순부채와 건강보험료 누적적자, 인구가 줄어드는 추세에서 지방정부 누적재정적자와 각종 연기금의 미래결손금까지 감안하면 향후 미래세대가 지고 가야할 짊은 어쩌면 한계에 다다랐는지도 모르겠다. 뿐만 아니라 가계부채도 부동산과 주식신용융자로 1000조를 넘어섰고 기업부채도 1000조에 육박해 소위 트리플 1000조 부채국가가 되었다. 그런데도 한국은행까지 정치적 목적의 고려선상에 등장한다면 큰일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68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