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혐오라는 이름의 전염병

등록날짜 [ 2021-04-12 15:19:55 ]

팬데믹 탓에 사회 불안 증가하면서
최근 특정인종 겨냥 증오범죄 잦아
혐오는 사회 급변에 따른 집단 증상
한국도 병적인 혐오 정서 경계해야


3월 16일 미국 애틀랜타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으로 한인 4명이 죽은 이후 아시아인을 상대로 한 크고 작은 범죄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길을 산책하던 중국 노인 한 명이 괴한에게 폭행당하기도 했고, 지난 30일에는 뉴욕의 지하철에서 한 흑인이 아시아계 남성을 무차별 폭행하고 목을 졸라 기절시켰는데도 누구 하나 말리지 않은 사건이 일어났다. 호주에서도 산부인과에 진찰을 받으러 온 한인 3세 여성에게 백인 여성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소리를 지르고, 욕하는 일이 있었다. 최근 빈발하는 이런 인종범죄가 우발적 일탈 같지만 점차 도덕적으로 쇠락하는 미국 사회의 병폐를 보여주는 불길한 단면이다. 애틀랜타의 총격 범인이 SNS에 올린 글을 보면 중국이 우한 바이러스의 원흉으로 미국인을 고의로 죽였으며, 우리 시대 최대 악이니 맞서 싸우자고 주장하는 등 광기어린 살인 동기를 엿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정서를 공유하는 하층 백인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흑인차별이 큰 사회문제 중 하나인데 팬데믹 발생 이후 그 대상이 아시아인으로 옮겨지면서 사회적 약자끼리 서로 가해를 가하기도 한다. 증오 범죄의 확산이 우려스러운 것은 이것이 비합리적이고, 근거도 없이 퍼져가는 혐오 정서에서 비롯되는 현상이고 사회의 발전에 큰 장해물이기 때문이다. 혐오는 본능이 아니라 철저하게 역사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며, 특정한 계기에 의해 폭발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전염되는 집단 심리의 하나다. 팬데믹 이후 환자와 사망자가 급증하고, 코로나로 인한 폐쇄조치로 경기가 침체되면서 사회적 불만과 불안감이 커지자 그 탈출구로 특정한 계층이나 인종을 향한 혐오와 폭력이 발산 되고 있는 것이다.


혐오가 미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라면 걱정이 덜하겠지만 문제는 현재 전 세계 곳곳에서 배제와 혐오의 정서가 동시다발적으로 커진다는 것이다. 외신을 보면 영국에서도 중국인, 그리고 이미 현지 국적을 가진 아시아인들을 향해서도 노골적인 편견과 증오를 드러내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도 아시아인에게 욕을 하거나 대중교통 탑승을 거부하는 등의 혐오 사건이 빈발한다고 한다. 필자도 유럽에 오래 살았지만 다행히 차별적 대우를 거의 경험하지 못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이슬람, 외국인, 아시아인에 대한 집단적인 혐오와 폭력이 늘고 있는 것을 외신을 통해 자주 접한다. 코로나 사태가 가라앉지 않자 이제 코로나 뿐 아니라 사회문제와 관련해서도 아시아인들에게 화풀이 하는 혐오정서가 슬금슬금 확대되면서 인종차별이 더 견고해지는 느낌이다.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가 시작되었다고 우리도 인종주의자들처럼 중국을 욕하거나 한국인은 중국인과 다르다고 강변하면 문제가 풀릴까. 아니면 일부 극단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이나 유럽에서 아시아인들이 철수를 하고 백인들의 기득권을 인정하면서 과거로 돌아가야 하는가. 혐오나 증오는 피해당사자들에게 문제를 전가해서도 안 되고, 혐오 이유를 절대 인정해줘도 안 되는 범죄다. 『문명과 혐오』의 저자 데릭 젠슨은 흑인에 대한 백인들의 여러 혐오범죄 사례를 분석하면서 사람들은 노예제처럼 자신들이 누렸던 기득권을 상실하거나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전환할 때 불안과 함께 혐오가 생긴다고 말한다. 혐오는 사회적 차별이나 전근대적 특권을 정당화하는 병리적 심리이며, 지금과 같은 사회전환기에 발생할 수 있는 집단 증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노인, 여성, 장애인, 그리고 특히 중국이나 일본인에 대한 혐오 정서가 벌어지는 일이 점점 잦은데 우려할만한 징조다. 이런 현상이 만성화되기 전에 바로 잡아야 한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




위 글은 교회신문 <693호> 기사입니다.


김석 집사
現 건국대 철학과 교수 철학박사(프랑스 현대철학)
신문발행국 논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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