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1-04-15 19:36:37 ]
천만 서울시의 장(長)을 뽑는 선거가 끝났다. 이번 재·보궐선거는 누가 꼭 좋아서라기보다 남은 임기에 일할 만한 사람을 선택했을 것이다. 코로나19라는 어수선함에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면서 선거에 참여한 모두에게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투표 결과를 알려 주는 각종 통계자료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당선자를 선택한 득표율뿐만 아니라 다른 후보를 선택한 이들의 목소리도 겸손하게 듣는 것이 필요하다. 당선에 교만하지 않고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치에 관심 있는 유권자는 자기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투표했을 것이니 그것이 모여 민의가 형성된다.
누가 당선됐든 선거의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도 국민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이 될 수 있는 것이 정치다. 특히 성도들은 선거 결과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응답을 구할 기도에 더 마음을 쏟아야 한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도 교회는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공약이 무엇인지를 기도하며 투표에 임했다. 정치인 중에는 국민을 대신한다는 명분 아래 상황에 따라 노선을 달리해 가며 말과 행동을 바꾸는 이도 있다. 그래서 투표하기에 앞서 나라를 위한 기도가 꼭 필요하다.
선거가 끝났지만 기도는 더 마음 쏟아 시작해야 할 때다. 내 뜻을 위임했다면 잘 감당하고 있는지 감시자 역할을 임기 내내 계속해야 한다. 투표는 선거하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고 감시하는 행동도 포함한다. 당선인의 행보와 행동에 대해 계속 지켜보고 관심을 가지며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내년으로 다가온 대선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할 때다. 하나님의 뜻을 늘 찾으며, 올바른 국가관, 안보관, 윤리관, 경제관, 역사관을 지닌 훌륭한 인물이 선출되도록, 공정한 투표와 개표가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위한 몇 가지 기도 제목을 적어 보자면 아래와 같다.
먼저 국가 안보·정치·경제·교육·외교가 안정되고, 나라가 어려울수록 자유민주적 가치로 단합해 위기를 극복하는 저력 있는 국민이 되도록, 정치인들이 올바른 식견과 통찰력을 가져 역사에 오점을 남기지 않고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켜 나가도록 기도해야 한다. 한·미동맹이 굳건해져 초강대국 미국이 중국의 동북아공정과 북한의 적화야욕에서 대한민국을 지키고, 북한의 핵무기와 생화학 무기가 완전히 폐기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또 성경에 반하는 차별금지법, 동성애법이 제정되지 않고, 간통죄와 낙태죄가 다시 유지되어 가정윤리가 바로 서도록 기도해야 한다. 국가를 분열하게 하는 지역·이념·계층 갈등이 사라지고 예수를 중심으로 하나 되고 경제가 활성화해 세계 복음 전도에 값지게 쓰임받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 자유로운 복음 증거와 교회 예배가 보장되고, 성경적으로나 윤리·도덕적으로 올바른 법치주의가 세워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기업을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많이 창출해 땀 흘리고 수고하여 얻는 성경적 복지정책이 구현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학교에서도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 갈 학생들에게 올바른 가정관, 국가관, 교육관, 사회관, 경제관, 윤리관, 도덕관, 역사관을 가르쳐 다음 세대가 성경적 가치관을 갖고 각 분야에서 국가와 교회의 필요한 일꾼으로 성장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한국 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 회개, 예수의 피, 성령 충만, 구령 열정이 넘쳐서 예수 몰라 지옥 갈 수많은 지구촌 영혼을 살리도록 기도해야 한다. 이슬람, 할랄식품 유입을 막고, 한국 교회 목회자들이 돈, 명예, 사치, 향락, 음란, 세속주의, 철학적 신학, 실용주의, 인본주의, 이기주의, 기회주의, 상황주의, 혼합주의, 합리주의, 다원주의에서 멀어지고 회개해 성경 말씀으로 회복하고 성도들에게 주님 재림의 믿음을 전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한국 교회는 나라와 위정자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땅끝까지 복음 전하는 예수 한국, 선교 한국, 통일 한국이 되어 하나님이 지키시고 사용할 만한 가치 있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또 코로나19가 전 세계와 대한민국에서 속히 종식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응답하실 분은 우리 주님이시다.
위 글은 교회신문 <69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