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1-10-27 01:04:53 ]
북한이 지속적으로 ‘폐기’를 주장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이란 무엇일까? 김여정은 지난 9월 25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간 남북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언급하면서 ‘적대시 정책’ 철회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김정은도 같은 달 29일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제안한 종전선언에 대해 “종전을 선언하기에 앞서 적대시 관점과 정책들부터 먼저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미국과의 모든 협상과 합의의 걸림돌로 제기해 온 대북 ‘적대시 정책’은 워싱턴 정계에서 북한 문제를 다룰 때 오랫동안 피로감을 더해 온 수사다. 미국의 외교 당국자들은 북한의 고위 관리들이 협상 때마다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하지만 정작 그 뜻을 물어보면 답변을 늘 회피한다고 회고했다.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이 주장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은 실체가 모호하며, 궁극적으로 한·미 동맹을 끝내라는 뜻이라고 지적한다.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서 “북한은 (미·북 협상에서) 적대시 정책을 수없이 언급하면서도 분명한 뜻을 밝히지 않았다”며 “북한은 적대시 정책 때문에 대화해 봐야 소용없다고 말하지만 정작 적대시 정책이 무엇인지 정의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조셉 디트라니 전 미국 6자회담 차석대표도 “북한은 협상에서 진전을 보지 못할 때나 미국, 한국, 일본과의 사이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 적대시 정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다가 막상 원하는 것을 얻고 나면 그 말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적대시 정책’은 상황에 따라 ‘전술적’으로 쓰는 표현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열린 북한과의 반관반민 회의에 여러 차례 참석한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적대시 정책의 정의와 관련해 “북한은 의도적으로 이를 모호하고 일정한 형체가 없게 유지하면서, 그때그때 자신들이 원하는 뜻으로 해석할 여지를 남겨 뒀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지난 2019년 10월 스티븐 비건 당시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스톡홀름에서 북한 당국자들과 만나 그들이 제기하는 적대시 정책의 의미에 대해 물어봤지만 대답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편 이른바 ‘뉴욕채널’을 통해 미·북 실무협상을 전담한 전 국무부 관리들은 “비공식 회동 시 북한의 외교 관리들이 적대시 정책에 대해 열거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여러 요구사항이 있지만 ‘한·미 동맹의 종식’으로 귀결된다”고 지적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지난달 김성 유엔주재 북한대사의 ‘북한을 겨냥한 합동군사연습과 각종 전략 무기 투입을 영구 중지하는 것으로부터 적대시 정책 포기의 첫걸음을 떼야 한다’는 유엔총회 발언은 연합훈련과 미군 배치가 적대시 정책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유용한 예”라고 말했다.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도 “몇 년 전 뉴욕을 방문한 북한 외무상에게도 적대시 정책의 뜻을 묻자 그는 ‘적대시 정책은 한·미 동맹, 한반도와 역내 배치 미군으로 대표된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클링너 연구원은 “북한이 오랫동안 언급한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종합해 보면 미군의 한국·일본·서태평양 주둔, 한·미 상호방위조약, 미·일 상호방위조약, 역내 미 핵 자산, 미국과 유엔의 제재, 인권 상황 비판 등 상당히 광범위하다”며 “북한은 서울에서 벌어지는 반북 시위와 한국 언론에 실리는 북한 비판 기사까지도 적대시 정책으로 간주하는 등 필요할 때 어떤 의미로든 사용한다”고 말했다.
브루스 벡톨 앤젤로주립대 교수는 “적대시 정책 철회 요구의 단기적 목표는 제재 완화이며 장기적 목표는 한·미 동맹을 끝내고 한반도에서 우세한 위치를 차지해 한국으로부터 대규모 원조, 현금, 식량을 얻어 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수십 년 동안 한반도 긴장의 원인을 제공한 북한이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문제 삼는 것은 ‘적반하장’이자 ‘주객전도’라며 북한의 대미·대남 전략이 바로 적대시 정책이라는 사실을 공개 제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킹 맬로리 랜드연구소 국제위기안보센터 국장은 “1950년 6·25전쟁을 시작한 뒤 한·미 선박 납치·침몰, 청와대 습격과 대통령 암살 시도, 육·해상 국경을 넘나들면서 저지른 수많은 사건에 책임이 있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른 약속을 위반한 당사자가 북한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 글은 교회신문 <72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