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2-06-30 17:08:57 ]
UN본부가 있는 뉴욕 맨해튼은 세계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곳 중 하나여서 주차 요금도 비싸다. 그런데 전 세계에서 온 외교관 중에서는 외교관들에게 부여된 ‘면책특권’을 악용해 맨해튼에서 상습적으로 불법 주차를 하고 벌금을 체납하는 사람이 많다. 일간지 <뉴욕데일리(New York Daily)>에 따르면 4년 동안(1997~2000년) 외교관들이 미납한 주차 요금이 2130만 달러(한화 2760억 원)에 달한다고 하니 지금까지의 누적 금액은 몇조 원에 달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최악의 주차 위반으로 꼽히는 나라에 이집트, 나이지리아, 쿠웨이트, 인도네시아, 러시아, 브라질, 모로코, 말레이시아, 중국, 파키스탄 등이 있다. 이 같은 문제는 UN본부가 있는 뉴욕뿐만 아니라 각종 UN 기구가 모여 있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나 각 나라 대사관들이 모여 있는 많은 나라에서 발생하는 공통된 사회 문제이다.
이를 보면서 우리 교회 교통문화지수는 어느 나라쯤에 해당될지 돌아보면 참으로 마음이 씁쓸해진다. 주일예배를 마친 후 교회 밖으로 차들이 혼잡하게 나가는 시간에 주차장 출구 절반을 막아 놓은 채 건강한(?) 가족들을 태워 나가시려는 분들은 우리 교회 사정을 너무나 잘 꿰뚫고 익숙하신 분들일 것이다. 아무도 딱지를 발부하지 않는 ‘면책특권’이 주어지기 때문일까. 요즘 들어 지하 주차장에서 오랜 시간 기다리다가 간신히 바깥으로 빠져나왔을 때 자주 마주하는 모습이다.
가족들을 태우려고 정차하면서 길을 막아 버린 차를 피해 옆 차선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원래 차선으로 가려고 하다 보면 곡예운전을 하게 된다. 혹시 성도 간에 접촉사고라도 난다면 큰 쓴 뿌리가 될 일이다. 또 새가족들이 그 모습을 본다면 교회 사정에 익숙해 보이는 분들이 악용하는 편리함에 마음 문을 닫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편리를 이용하는 가족들이나 그 자녀들도 지금은 아버지가 지혜롭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그의 영과 양심은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차가 많은 러시아워 시간에 교회 앞 대로의 차선 하나를 막아 놓고 장사하면서 365일 정체를 유발하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테헤란로나 다른 지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만큼 다들 양심이 마비되고 누구도 바로잡기를 포기한 것처럼 교회 안에서도 어느새 집단 마비가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외교관들이 주정차를 위반한 벌금 금액이 수조 원씩 쌓인 만큼, 반복되는 작은 불의도 쌓이다 보면 결국 호리라도 남김없이 그에게 청구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편 코로나19 사태 이후 주차 공간이 여유가 있는데도 주차 공간이 아닌 곳이나 인도에 주차하려는 생각 또한 교회를 분열시키는 악한 영이 성도들 마음을 상하게 하려는 것에 이용당하는 도구가 되는 것임에 영적인 눈을 떠야 한다. 우리 교회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복음을 위하여 아무리 먼 길이라도 마다않고 심방하러 가고, 전도하러 달려가는 충성된 성도 분들이 참으로 많고 그러한 주님 닮은 모습들이 신령한 도전이 된다. 그렇다면 하물며 그리스도의 편지(고후3:3)로서 ‘천국의 외교관’ 신분인 우리가 고작 몇십 미터 덜 걷고, 남들보다 얼마나 더 빨리 간다고 믿음의 가정에게 착한 일(갈6:10)은커녕 쓴 뿌리가 되어야 하겠는가.
기울어 가는 회사의 지하 주차장을 가 보면 지상과 가까운 층일수록 회사 간부들의 차가 차지하고 있고 고객 주차장은 제일 아래 구석에 있다. 과거 어느 유명 대기업의 회장께서는 자기 차를 회사 마당의 제일 구석에 주차하기로 유명했는데 그 이유는 고객들이 쉽게 주차하시라는 배려였다.
천국도 이와 같을 것이다. 천국은 주차장이 없겠지만 천국 시민을 닮은 교회라면 교회의 중직일수록, 신앙 연조가 오래돼서 교회 사정을 잘 아는 분일수록 더 일찍 와서 텅 빈 주차장에도 제일 멀리 차를 댈 것이다. 사랑하는 내 연세가족들이, 혹은 교회를 처음 찾은 새가족들이 조금이라도 덜 불편하라고 말이다. 혹 연로하고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을 차에 태우고 내려 드릴 때도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여 몇 미터만 더 이동해 차를 대면 뒤따라오는 차와 차량 흐름에 방해되지 않게 승하차할 수 있는 공간은 얼마든지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마음이 ‘주님처럼 섬기는 마음’이다. 주님처럼 교양과 법을 지키는 그리스도의 편지, 그리스도의 향기, 천국의 아름다운 외교관으로서 선한 양심을 가져야만 비방받지 않고(벧전3:16) 한 영혼이라도 덜 빼앗길 수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75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