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2-08-23 21:18:46 ]
북한의 지하교인들은 북한 정권의 가혹한 박해와 살해 위협에도 신앙을 지켜 나가고 있다.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하지는 못하지만 주위의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구제 사역을 하고 있다. 한국교회와 선교단체에서 보내는 후원금으로 이웃들을 섬기면서 복음 전할 기회를 마련해 두는 것이다.
북한에 살고 있는 이명희 씨(가명, 73세)의 딸들은 남몰래 이웃을 돕는다. 주로 친척들과 동네 사람들이다. 성실하지만 장사 밑천이 없어 장마당에 나가 장사할 수 없는 사람들, 거리의 고아 꽃제비들, ‘굶어 죽지 않으려고’ 중국 국경을 넘었다가 보위부에 걸려 구류를 살게 돼 보석금이 필요한 사람들 등이다. 대가 없이 거저 주면 의심하기 때문에 이 씨의 딸들은 장사를 해서 번 돈을 빌려 주는 형식을 취한다. 그러나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빚 독촉은 하지 않는다. 어머니인 이명희 씨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10:8)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명희 씨는 올해 5월 북한에 있는 딸들을 구출할 기회가 있었다. 누군가가 딸들의 탈북 비용 전액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많은 고민과 기도 끝에 이 씨는 소중한,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그 기회를 거절했다. ‘하나님께서 북한 땅에 지하교인들을 심어 놓았는데 마음대로 데려와서는 안 된다’는 기도 응답을 받았기 때문이다.
북한에 있는 그의 딸들은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선행으로 인해 “만민의 어머니”로 불리고 있다고 했다. 이 씨는 딸들과 어렵게 전화가 연결될 때마다 “돈은 우리가 얼마든지 지원할 테니까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줘”라며 “우리가 통일이 돼 다시 만날 때 서로 부끄럽지 않도록 자기가 맡은 일을 잘하자”라고 격려한다고 했다.
박민우 씨(가명, 41세)는 북한에 있는 선교사 11명을 지원하고 있다. 그들도 이웃들을 돕는 ‘구제 사역’을 한다. 한국에서 보내 준 돈으로 굶어 죽어 가는 어려운 북한 가정들에게 돈을 빌려 준다.
“공짜로 돈을 주면 의심하기 때문에 살림이 펴면 그 때 갚으라고 이자 없이 빌려 주는 거예요. (돈 갚을) 기한이 지나면 ‘됐다. 괜찮다. 앞으로 살다 보면 쥐구멍에도 해 뜰 날이 있는데 돈이 생기면 그 때 갚으라’고 합니다. 은혜를 베푸는 거예요.”
박 씨는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 들어가는 곳에는 역사가 있다”라며 “(북한의 비밀 선교사들은) 굶어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식량을 공급해 주고, 아파서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의약품을 나눠 주는데, 북한 주민들은 저 사람들이 남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그들을 존경하고 의지하면서 신뢰가 쌓이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들에게 ‘그 돈은 내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다. 하나님이 네게 베푸신 사랑’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목숨을 걸고 올려 드리는 예배
북한에 사는 김미진 씨(가명, 38세)의 가족은 2008년 이래로 매주 주일마다 비밀리에 예배를 드린다.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숨죽여 찬양과 기도를 한다. “신음 소리 같지만 예배 자체는 생명을 건 예배”라고 김 씨는 말했다.
박민우 씨는 15년 전 북한에서 선교사들과 비밀리에 드리던 예배를 떠올렸다. 주일이 되면 그 지역에 파송된 선교사 여섯 명이 모여 돌아가며 설교를 했다. “대개 한 사람이 말씀을 전하면 다른 사람들은 앉아서 들어요. 찬송을 부르거나 소리 내서 기도하지는 못합니다. 뜨겁게 할 수 없습니다. 항상 주변의 망을 봐야 합니다. 갑자기 누군가가 집에 찾아오면 (예배는) 중간에 중단됐습니다. 각 처소 담당 선교사님들이 짧게 성경을 읽고 말씀 나누고 기도하는 그런 형식이었죠. 나지막이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을 소리 내서 외우기도 했습니다.”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북한에서 성도 40여 명이 함께 모여 예배드린 그날의 감동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박 씨가 설립한 지하교회는 한 선교사가 보위부에 잡혀가면서 해체 위기에 처했다. 선교사들은 북한의 각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도 함경북도에 있는 항구도시 청진으로 피신해 3년 동안 뱃사람으로 일했다. 2011년 보위부에 잡혀갔던 선교사가 다행히 3년 만에 무죄 석방됐다. 그때 중국의 한 교회의 목사님 가족이 친척을 방문하는 형식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그들은 북한의 비밀 선교사들과 그의 가족들을 모두 한자리에 불러 예배드렸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두가 모여 예배를 드린 것이죠. 정말 은혜로웠어요.” 그때를 회상하는 박 씨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위 글은 교회신문 <76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