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생 때 한 교수님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 교수님은 한번은 택시로 고향을 내려가다 우연히도 어떤 스님과 합승을 하게 되었답니다. 목사이자 신학교 교수이신 그분과 스님이 함께 좁은 택시에 합승한 장면은 흥미로운 장면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교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을 건넸습니다. “스님, 저는 평소에 불교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렇게 스님과 함께 합승하게 된 것도 인연인 것 같습니다. 짧은 시간이니까 간단하게 불교의 진리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시겠습니까?” 스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아, 불교의 진리는 워낙 심오해서, 마치 여름철에 풀을 빳빳하게 먹인 가사 장삼을 입고 안개 낀 길을 걷노라면 언제 젖었는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작은 안개 물방울들이 서서히 옷에 스며들어 옷 전체가 젖듯이 그렇게 서서히 깨달아지는 것입니다.”,“아, 그렇습니까? 그럼 스님의 옷은 다 젖었습니까?” 이러한 교수님의 질문에 약간 당황한 스님은 “아직도 제 옷은 다 젖지 못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대답을 들은 그 교수님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는 “불교의 진리가 안개 낀 길을 걷다가 언제 젖었는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면 내가 믿는 기독교의 진리는 소낙비와 같습니다. 분명하게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진리입니다.”는 말과 함께 그 스님에게 힘 있게 진리의 복음과 예수님을 믿을 것을 권하자 스님은 한 번 생각해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헤어졌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복음은 누구나 분명하게 알고 이해하고 믿을 수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토록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면 보편적인 진리일 수 없습니다. 학력과 연령 고하, 상식 유무를 막론하고, 자신이 죄인임을 고민하며 벗어나기를 원하면 누구나 믿고 구원받을 수 있는 특성을 지닌 것이 복음입니다. 성직자조차 아직도 젖지 못한 진리라면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거나 극히 소수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믿고 확신하는 진리의 복음은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구원이며 완전한 속죄입니다.
이러한 분명하고 확실하며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진리가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이유는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부은 바 되었기 때문”(롬 5:5)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몇 방울이 우리 마음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아예 소나기처럼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되었기에(poured into our heart) 우리의 삶은 영원히 변화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모든 죄가 용서되었으며, 삶의 주인 자체가 자신으로부터 예수님께로 바뀐 것입니다. 그 어떤 실험 용액이나 양념도 만들 수 없는 새로운 피조물로, 새로운 맛으로 변화를 받은 것은 바로 우리가 믿는 소낙비와 같은 확실한 복음때문입니다. 아직도 옷이 젖지 않은 스님의 흔들리는 대답과 판이하게 완전히 흠뻑 젖은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곧 그리스도인들인 것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14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