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당시에 사랑을 나타내는 통상적인 단어는 에로스(eros)와 필리아(philia)였다. 에로스는 성적인 의미의 사랑으로, 사랑받는 대상의 가치나 매력에 의해서 일깨워진다. 필리아는 마음을 즐겁게 하는 어떤 것에 대한 일반적인 호의를 뜻한다. 아마도 ‘우정’이라는 말로 적절하게 표현될 수 있는 단어이다.
필리아의 사랑은 로마제국 하에 있었던 예수 당시의 사회적 관계를 드러내주는 것이기도 하다. 로마제국은, 후원자가 피후원자의 삶을 보장해주고 그로부터 받는 충성으로 자신의 힘을 유지하는 제도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보호와 충성으로 얽혀진 후원자제도는 로마사회에서 권력을 확장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자신의 힘을 뒷받침해주는 든든한 바탕이 된다는 면에서 후원자와 피후원자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를 넘어서 필리아의 사랑, 즉 우정의 관계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사용되는 사랑, 예수에게 적용된 사랑은 아가페(agape)라는 단어이다. 아가페는 기독교의 사랑을 나타내는 특별한 단어이다. 아가페는, 다른 방식으로는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대상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사랑을 의미한다.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란, 사랑받을 만한 조건이 없는 존재이며, 받은 사랑을 갚을 길이 없는 존재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가페로 표현하는 것은, 그것이 죄로 말미암아 사랑받을 수 없었던 인간에게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인간을 사랑할 만한 존재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필리아가 사랑을 베푼 사랑에 대한 보답을 요구한다면, 아가페는 받은 사람에 대한 보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어차피 갚을 것이 없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므로, 사랑을 받은 사람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가페이다.
성서에서 사랑에 관한 숱한 구절들을 읽지만, 우리는 늘 사랑의 상처에 시달린다. 내가 사랑한 만큼 돌아오지 않은 사랑 때문에 우울해하고 가슴 아파한다. 그러나 성서에서 이야기하는 아가페의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 사랑 때문에 밀려오는 ‘손해’의 감정이 가당치 않은 것임을 늘 이야기한다. 사랑은 자신의 힘을 늘리기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은 사랑받는 사람이 새로운 힘을 얻도록 하는 것일 뿐이다.
올해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모두들 입을 모으는 것을 보면, 아마도 돌려줄 것이 없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날 듯하다.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는 의미이다. 어렵고 힘든 시절, 성서에 귀 기울이며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위 글은 교회신문 <15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