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오는 ‘바보’는 구브로 섬(오늘날 키프로스)의 서쪽에 있는 항구이다. 이곳은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1차 전도여행 중 살라미를 떠나 도착한 항구도시다. 오늘날 파포스로 불리는 이곳을 바울과 바나바는 살라미에 도착한 후 섬 중앙을 통해 육지로 이곳에 왔다(행13:4~6). 나 역시 라나카에서 빌린 차로 이곳을 찾았다. 이곳의 운전석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오른쪽에 있어 한동안은 혼란스러웠으나 갈수록 익숙해져 라나카에서 바보까지 130km를 2시간 3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마 운전석이 우리나라처럼 왼쪽에 있었다면 더 시간이 단축되었을 것이다.
바보(Paphos)는 구 바보와 신(新) 바보로 구분되는데 바나바와 바울이 방문한 곳은 신 바보(new Paphos)이다. 이곳 바보는 BC 55년 로마의 수중에 들어간 이후 이 섬의 수도가 됐고, 로마의 지방 총독의 주재지로서 바울이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복음을 전한 곳이다(행13:6~12). 그런데 이를 방해하려던 바예수는 바울에게 질타를 받아 얼마 동안 소경이 되리라는 선언대로 장님이 됐고 이에 큰 감명을 받은 서기오 바울은 더욱 바울의 전도를 받아들이게 됐다.
나는 그동안 두 차례 이곳을 방문했으며 세 번째는 ‘성서의 땅을 가다’ 촬영차 윤석전 목사님과 함께 방문했다. 두 차례의 방문 때에는 많은 자료를 사진에 담으려고 바빴기에 바울의 선교에 대한 열정을 음미해 보는 묵상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윤석전 목사님과 함께했을 때는 바울이 채찍에 맞았다고 전해지는 기둥을 붙잡고 눈물로 기도하는 윤 목사님을 보며 성지 답사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갖게 됐다.
이제까지 45차례의 성지를 답사하는 가운데 단순히 많은 자료를 사진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다녔으나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역사하신 성지의 사건을 생각하며 그곳에서 들려주는 하나님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마음으로 바울의 채찍교회를 떠나 바울이 버가로 떠났던 항구로 향했다.
항구 북쪽에는 중세 때의 성채가 항구를 방어하듯 서 있었다. 성채 꼭대기에 올라가니 북서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지중해가 놓여 있고 남쪽으로는 바보 항구가 한눈에 들어왔다. 2천여 년 전 사도 바울은 40에 하나 감한 매를 맞는 고통을 겪고 나서도 전도여행을 포기하지 않고 이곳 바보 항구에서 배를 타고 오늘날 터키 남부에 있는 버가로 전도여행을 했으니 그의 전도 열정을 새삼 느꼈다.
성채에서 내려와 해안가로 가자 왕들의 무덤이 멀리까지 보였다. 이곳에 있는 왕들의 무덤은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후 3세기경의 것들로 바위를 파서 만든 것이었다. 무덤 벽에는 2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당시의 색깔로 된 벽화가 남아 있었다. 이곳이 왕들의 무덤이라고 불린 것은 무덤의 규모와 화려함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무덤들은 훗날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피해 숨었던 곳이기도 하다.
바보는 바울 사도의 전도의 숨결이 깃든 곳이다. 바울이 가는 곳은 어디든지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다. 나의 삶도 어디를 가든지 그리스도의 흔적을 남겨야 하겠다는 다짐을 해보는 귀한 시간이었다.
위 글은 교회신문 <15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