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중국 북방 국경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가 기르던 말이 국경을 넘어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이 노인을 위로하자 이 노인은 “이것이 또 무슨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라고 말하면서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몇 달 후에 이 말이 또 다른 말 한 마리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에 동네 사람들이 이 노인을 축하하자 이 노인은 “이것이 화를 가져올지도 모르잖소”라면서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이 노인의 아들이 새로 온 말을 타고 놀다가 말에서 떨어져 그만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이 노인을 위로하자 이 노인은 “이게 또 무슨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라면서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지나 북방의 적들과 전쟁이 나서 젊은이들이 강제로 징집되어 전쟁터에서 전사하게 되었는데, 이 노인의 아들은 다리가 부러져서 전쟁에 나가지 않고 부자가 같이 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인간만사 새옹지마”는 누구도 자기의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알 수 없다는 점과, 인생에는 좋은 일들이 있으면 나쁜 일들도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고사성어가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을 온전하게 표현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 인간이 어느 누구도 자기의 미래에 관해 알 수 없지만, 온 세상과 인간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과 특히 미래까지도 다 알고 주관하고 계신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 10:29-31)
또한 우리 인생에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좋은 일들과 나쁜 일들을 통해서 결국에는 하나님을 위해서나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선한 결과를 만들어내시는 분이라고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구약성경의 요셉이 삶의 눈물겨운 역경들을 통과하면서 터득한 진리입니다.“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 50:20)
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의 사도 바울도 로마의 성도들에게 주지시켜주었던 신앙적 진리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암시하듯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빠져 푸념하고 살거나, 현재의 좋은 일에도 기뻐하지 못하고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쉽게 좌절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을 주관하셔서 하나님을 위해서나 우리 그리스도인을 위해서 선한 결과를 만드시는 분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현재와 미래의 삶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16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