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속에 죽음, 죽음 속에 생명

등록날짜 [ 2009-09-22 17:53:28 ]

벌써 이 년 전이다.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감동이 지금까지 살아있다. 침례신학대학교의 교수들이 연세중앙교회의 후원으로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성지 연수를 다녀왔고 당시의 사진을 비롯한 자료들을 지금도 강의 자료로 사용하고 있다. 또 다시 처음 이스라엘을 여행했던 15년 전의 일들이 떠오른다.
아버지의 소천으로 갑작스럽게 귀국길에 올랐다. 당시 형님은 스웨덴에서, 나는 영국에서 연구활동 중이었다. 김포공항까지 직항 노선이 없던 시절이라 형제는 파리에서 만나 같은 비행기로 서울에 도착했다. 천국 소망이 있었지만 그래도 시베리아를 건너는 비행기 안에서 두 형제는 많이도 울었다.
다시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영국으로 돌아갔지만, 가족 중에서 일어난 처음 당하는 슬픔인지라 연구에 집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이집트 여행을 계획하고 성경 속에서만 듣던 이스라엘 땅을 밟았다. 한 때는 신학대학 졸업 후 바로 가보고 싶었던 지역이었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하다가 비로소 첫 발을 디딘 것이다.
예수님께서 직접 발을 딛고 나와 같은 공기를 마시며 말씀을 외치셨던 곳에 도착했다는 흥분과 함께 곧 이어 이 여행을 마치면 성경의 내용들이 더욱 살아서 내게 다가올 것 같은 기대가 차올랐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감람산을 본 순간 실망이 밀려왔다. 자료를 통해서 그 규모를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비록 장엄한 모습은 아니라 할지라도 서울의 남산 이상의 광경을 기대했었다. 감람산은 척박한 동산일 뿐이었다. 기대를 품고 찾아간 베들레헴, 나사렛, 그리고 갈릴리 호수 등을 돌아보았지만 영국이나 스위스의 아름다운 풍광과 비교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한 가지 내 속에 들어온 가장 큰 충격과 감동은, 그 곳에 주님의 흔적은 있되 주님은 이미 그 지역적인 한계를 벗어났다는 사실이었다. 주님은 온 인류에게 소망이 되셨다.
이어서 수에즈 운하를 건너 이집트를 여행했다. 큰 기대를 품고 기자의 피라미드를 방문했다. 그 육중함과 거대함에 놀랐다. 건축술에 대한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책으로 알고 사진으로 보았던 것보다도 더 큰 감동을 주었다. 이집트 제4 왕조의 파라오 무덤으로 알려진 피라미드의 내부에 있는 ‘왕의 방’에 들어가 보았다. 허무함이었다. 영원히 살고자 했던 그 소망은 사라지고 빈 석관이 관광객들을 맞이할 뿐이었다. 이집트 박물관의 투탕카멘 왕의 황금마스크는 전시되어 관심을 끌 뿐이었다. 생명이 없는 사막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지키기 원했던 그들이 영원히 죽은 흔적만을 후대에 보여주고 있었다.
이 여행을 통해서 나는 뚜렷하게 대비되는 역사의 흔적을 밟았다. 이 땅의 생명 속에 있는 삶이 아니라 죽음 속에서 피어나는 소망을 새롭게 체험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생명이고 우리의 죽음은 영원한 생명의 전주곡이라는 것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아멘, 그렇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16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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