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한국인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형제와 불화하여 남과 북으로 갈리어 전쟁을 한 것이 그렇고, 경제적 축복을 성취하고자 발버둥쳐 온 세월들이 그러합니다.
야곱이 왜 그렇게 험악한 세월을 보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자신이 직접 이루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욕심이었습니다.
욕심을 가진 야곱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없고, 오직 스스로 하면 된다는 의지만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무시된 채, 의욕이 넘치면 과욕이 되고, 과욕이 되면 정도를 벗어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죄를 짓게 됩니다. 또한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의 역사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선한 것이며 거룩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을 성취하는 방법도 선하고 거룩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이룰 때 남을 속이거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그에 대한 책임을 물으시고 그 사람은 고통을 겪게 됩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자신의 힘으로 성취하기 위하여 어머니 리브가와 함께 형 에서를 속이고 아버지 이삭을 속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 하란에 있는 외삼촌 집으로 도망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아버지와 형을 속인 것처럼, 거기에서 외삼촌에게 속으면서 험악한 세월을 보내는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야곱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때에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라고 하십니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정체성을 바꾸고 인간성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땅이요,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다시 정착하려면 과거의 거짓된 모습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스라엘’이란 이름의 뜻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해석할 때에 매우 조심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나님을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이 하나님을 이긴다는 표현은 신학적으로 허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서학자들은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표현을 함부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란 히브리어를, 어의적으로 분석해 보면,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God rules)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지금까지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혼자서 축복을 만들어가려는 야곱의 삶을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믿음을 갖고, 이스라엘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야곱처럼 스스로 자신의 삶을 통치하면서 살려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이스라엘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통치하고 계신다는 신앙 안에서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신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야곱의 삶에서 이스라엘의 삶으로 바꾸는 것이 신앙이요,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처럼, 나의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17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