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칼럼] 예수, 그분을 닮고 싶다

등록날짜 [ 2010-01-25 15:39:49 ]

예수, 그분을 닮고 싶다

영성 깊은 신학교를 꿈꾸며

겨울방학이다. 신종 플루로 한 주 늦게 시작한 지난 2학기는 성탄절을 앞두고 마무리되었다. 한 주 한 주 이어지는 삶 속에서 두 학기를 진군하듯이 살아온 것 같다. 하루의 마침을 통해서 하루의 삶을 돌아보고, 연말을 통해서 한해 삶의 전반을 돌아보게 된다.   한 해를 결산하듯이 천국 문 앞에서 한 인생을 결산할 날이 올 것이라 짐작하면서 한 해를 보냈다.
새해 첫 주간에는 우리 대학의 전체 교수들이 퇴수회(退修會)를 가졌다. 한 발 물러서서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갈 또 다른 일 년을 계획하는 모임이었다. 퇴수회 기간에 기도 시간을 가졌다. 합심해서 기도할 때 갑자기 한 교수가 ‘주여’를 세 번 크게 부르짖은 후에 통성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 교수의 기도 소리 속에 다른 교수들의 기도는 묻혔다. 아마도 다른 교수들의 생각은 여러 가지로 복잡했을 것이다.
나는 그 기도 소리가 지난 일 년을 깨우는 외침이라고 느꼈다. 신학의 정점에서 흔하게 발생할 것 같은 영성의 외침이 의외로 낯설다. 교수들의 기도 모임에서 아마도 처음 있었던 일이 아닌가 여겨진다. 나는 그 교수님의 변화되는 모습을 보고 늘 도전을 받는다. 전혀 부르짖는 기도를 하지 않던 교수님이었다. 학기 중에는 매주 수요일 정오에 300여 명의 학생이 기도했다. 학생들이 떠난 빈 교정에서도 매주 수요일 정오에 어김없이 이 기도회는 지속된다. 한 분 교수님의 희생과 헌신을 통해서 기도의 불꽃이 꺼지지 않고 살아난 것이다.
평생 신앙생활을 해도 ‘주여’ 소리 한 번 외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손들고 찬양하는 것을 어색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성령의 불이 떨어지면, 외치지 말라고 해도 부르짖음이 나오고, 손들지 말라고 해도 손이 번쩍 올라가고, 울고 싶지 않아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게 된다. 바로 그렇게 변화된 그 교수님의 모습이 신앙과 신학의 조화를 이루어가는 신학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특강 시간에 수원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의 통찰력 깊은 강의가 있었다. 신학을 위한 신앙 훈련인가, 아니면 신앙을 위한 신학 훈련인가? 신학교의 사명은 무엇인가? 현장에 적합한 신학 교육의 필요성을 시종일관 겸손한 모습으로 분명하게 전달했는데, 그 내용은 교회를 위한 신학 교육을 교수들이 실천하라는 요구였다. 그 강의는 먼저 학생들 앞에서 경건의 모습을 보이라는 도전이고,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는 바울의 교훈을 되새기게 하는 권고였다(고전 11:1).
올해는 예수님을 더욱 닮고 싶다. 어찌 그분의 모든 모습을 닮을 수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그분을 닮고 싶다. 부르짖는 기도를 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닮고 싶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위 글은 교회신문 <17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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