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04-19 08:20:49 ]
복음의 진수 바로 알고 유혹 이기며
다시 오실 예수만 바라보는 신앙생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유치한 질문 같지만 가장 기본적 문제이다. 기독교의 복음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말하고, 이는 다른 종교에 없는 다섯 가지 신비이며 비밀인 ①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②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죽으심 ③예수님의 생명의 부활 ④예수님의 영광스런 승천 ⑤예수님의 심판과 구원의 재림의 진리를 말한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 다섯 가지 예수님의 본질과 사역을 믿는 것이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결과는 영생이다.
그런데 네 가지 진리(①~④)는 이미 이뤄졌고 마지막 하나인 재림(⑤)이 남아있다. 이 재림신앙의 기독교는 소망의 공동체로 피 흘림 속에서도 존속해 왔다. 어느 시대이건 신앙이 깊어질수록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을 민감하게 기다리며 사모하게 된다. 그런데 생활의 여유가 생기고 세상이 편해지고 재미있는 여건이 많아지면서 이 재림의 소망이 희미해지며 성도들이 세속화되는 경향을 보게 된다. 오늘날 강단에서 재림에 관한 설교가 사라지며, 교회가 정치와 명예와 금력과 교권의 유혹으로 영력이 메말라가는 현상에 우리는 긴장하여야 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한 작품에 나오는 서글픈 에피소드 한 토막이다. 중세 어느 날,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스페인 남부 어느 도시에 재림하신다. 아주 조용히 몰래 나타나셨건만 가난하고 병들고 눌려 살던 서민들은 재림하신 주님을 당장에 알아차린다.
“호산나, 주 예수여!”를 외치며 무리지어 그의 뒤를 따른다. 그러나 교회 당국(당시의 추기경)은 재림하신 예수님을 전혀 반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즉시 체포, 구금하여 “이미 당신은 당신의 모든 권력을 기존의 교회에 넘겨주었으니, 당신 없이도 우리가 잘 해가고 있습니다. 당신의 등장은 우리에게 방해가 되니 당장 퇴거해 주십시오”라고 위협한다. 안 떠나면 십자가형보다 더 고통스러운 타는 불 속에 산 채로 던져 넣겠다고 협박한다. 다시 오신 주님을 문 밖으로 추방하면서 저들이 내뱉은 마지막 말은, “어서 꺼지시오. 두 번 다시 오지 마시오”였다.
여기에서 작가는 당시의 교회를 이미 악마와 손을 잡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기는커녕 거부하며 기존 특권 유지와 세속적 영화만을 탐하는 집단으로 평가한다. 이런 현상은 교회가 타락하고 영적 암흑으로 스며들어갈 때 오늘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타락한 종교형식주의와 교권주의 세력들이 주님의 재림을 거부하고 적그리스도의 세력과 영합하여 성도를 괴롭히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단7:25). 예수님이 초림으로 오셨을 때 주님과 그를 믿는 자들을 가장 핍박하고 고통을 주었던 자들은, 바로 당시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서기관 과 제사장의 종교지도자들, 유대교의 열심당원들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꼭 오신다. 주님의 재림은 분명히 역사 속에 이뤄진다. “마라나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하는 신앙고백으로 오늘 우리는 현실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주 예수의 은혜가 있는 모든 자들이여, 주의 재림을 기다리라!
위 글은 교회신문 <18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