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05-24 09:04:31 ]
성경적 시간 개념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은 헬라어의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입니다. 전자가 양적인 시간 개념 곧 측정이 가능한 객관적인 시간이라면, 후자는 질적인 개념의 시간, 곧 하나님께서 정하신 결정적인 사건으로서의 시간입니다. 이 두 시간 개념은 따로 존재하거나 임의로 분리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항상 하나로 존재해야만 본래의 의미를 유지할 수 있는 단일 개념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이 두 용어는 엄격하게 구별하여 사용되기도 하지만, 서로 교차되거나 동의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자주 나옵니다. 헬라어와는 달리 히브리어에서 시간은 분석적으로 제시되지 않고 양적이면서 질적인 시간을 동시에 포괄하고 있습니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선용하며 지혜롭게 사는 것일까요?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우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라고 하면서 “세월을 아끼라”고 권면합니다(엡5:15~16).
바울에 의하면, 세월을 아끼는 것이 지혜롭게 살아가는 가장 올바른 방법입니다. 여기에서 ‘세월’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인 ‘카이로스’입니다. 그리고 ‘아끼다’는 어원적으로 ‘구속하다’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면제금을 내고 해방시키다’라는 뜻입니다. 곧 우리가 가진 것을 투자하여 자신의 것으로 확보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아끼다’는 나중을 위하여 저축하거나 남겨둔다는 소극적 의미가 아니라 모든 것을 활용하여 현재 주어진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삼아야 한다는 적극적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매일 매일의 삶을 하나님의 ‘카이로스’적 기회로 삼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기회가 과연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와 관련됩니다. 바울이 지적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갖고 계신 가장 큰 우선순위의 관심은 우리의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4:16).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속사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항상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세상 일 모두가 그러한 것처럼 시간도 객관성과 주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같은 양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사람에 따라 그 흐름 속도가 달리 느껴지는 것도 양적 시간 속에 질적 차이의 시간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 역시 두 가지 시간 개념과 관련이 있습니다. 곧 객관성의 시간이란 ‘크로노스’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객관적 시간을 말합니다. 반면에 주관성의 시간이란 양으로 측정할 수 없는 질적 시간 곧 ‘카이로스’를 지칭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객관적 시간 속에서 주관적 시간을 경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주어진 시간을 사랑과 뜨거운 열정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라헬을 사랑하였던 야곱은 노동으로 보낸 7년의 고된 세월을 마치 며칠처럼 여길 수가 있었습니다(창29:20). 곧 길고도 고된 ‘크로노스’를 사랑의 ‘카이로스’로 바꾼 것입니다. 삶의 정해진 한계를 알 수 없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시간의 불확실성을 안고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시간을 채울 수 있다면 불확실성이란 불안감을 자연스럽게 해소시키면서 매 순간을 새로운 의미로 채우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19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