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06-07 07:37:14 ]
어느 날 60세가 넘은 노부부가 성격 차이로 이혼했다. 그 노부부는 이혼한 그날 이혼 처리를 했던 변호사와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주문한 음식은 통닭이었다. 남편은 마지막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날개 부위를 찢어서 아내에게 권했다. 권하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에 좋았던지 동석한 변호사는 어쩌면 이 노부부가 다시 화해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였다. 그 순간 아내가 기분이 상한 표정으로 화를 내었다.
“지난 삼십 년간 당신은 늘 그래 왔어! 항상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으로만 생각했어! 난 닭다리 부위를 유난히 좋아한단 말이야! 내가 어떤 부위를 좋아하는지 당신은 이제껏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어!” 그러자 남편은 화를 내는 아내를 향해 “사실 닭 날개 부위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위야! 나는 내가 먹고 싶은 부위를 삼십년간 항상 당신에게 먼저 건네준 건데 어떻게 이혼하는 날까지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 응?” 화가 난 부부는 서로 씩씩대며 그 자리를 박차고 각자의 집으로 가버렸다.
집에 도착한 남편은 자꾸 아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정말 나는 한 번도 아내에게 무슨 부위를 먹고 싶은가 물어본 적이 없었구나. 그저 내가 좋아하는 부위를 주면 좋아하겠거니 생각했지. 내가 먹고 싶은 부위를 떼어내서 주어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아내에게 섭섭한 마음만 들었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내가 잘못한 것 같아! 나는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사과라도 해서 아내 마음이나 풀어 주어야겠다.’ 이렇게 생각한 남편은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핸드폰에 찍힌 번호가 남편의 전화임을 안 아내는 아직 화가 덜 풀려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아 끊어버렸다. 아내는 연거푸 또다시 전화가 걸려오자 이번에는 아주 배터리를 빼버렸다.
다음날 아침 일찍 잠이 깬 아내 역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지난 삼십 년 동안 남편이 날개 부위를 그렇게 좋아하는 줄 몰랐네! 자기가 좋아하는 부위를 나에게 먼저 떼어내 건넸는데 그 마음을 모르고 나는 뾰로통한 표정을 보여주었으니 얼마나 섭섭했을까? 나에게 그렇게 마음을 써 주는 줄은 몰랐구나! 아직 사랑하는 마음은 그대로인데 헤어지긴 했지만 늦기 전에 사과라도 해서 섭섭했던 마음이나 풀어 주어야겠다.’ 곧장 아내 할머니는 남편 할아버지에게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남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혹여 내가 어제 전화를 안 받아서 화가 대단히 났나 보다 생각하는 순간,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남편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이에 황급히 남편이 있는 집으로 달려간 아내는 핸드폰을 꼭 쥐고 죽어 있는 남편을 보았다. 그 핸드폰에는 남편이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보내려고 찍어둔 문자 메시지가 있었다. “여보 미안해, 사랑해, 용서해 줘.”
사람들은 상대방의 마음을 세심히 배려하며 살기보다는 이렇게 늘 자기중심적이고 일방통행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서로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받으며 소통의 부재 속에서 ‘너와 나의 인격적 사랑의 관계’를 상실한 채 마음 아파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의 부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를 통해서만 회복될 수 있다고 말한다(엡2:13~18). 우리가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다 내어주신 십자가를 묵상하며 소통의 길로 나아간다면 ‘너와 나의 인격적 사랑의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행복은 소통을 통해 서로에게 흘러가기에 그러하다.
위 글은 교회신문 <19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