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칼럼] 상(喪)을 당한 집에 가서 무슨 말을

등록날짜 [ 2011-04-20 10:02:24 ]

예수 영접하지 않은 고인(故人) 문상 괴로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시작임을 알아야


우리는 종종 상(喪)을 당한 집에 문상을 갑니다. 문상을 가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상을 당해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입니다. 방문하는 그 자체가 위로이기도 하지만 적절한 말로 위로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의 상갓집에 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고인이 천국에 갔을 것이고, 유족들 역시 언젠가 고인이 된 가족을 분명히 다시 만날 것이라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시 잠깐 이별의 슬픔은 피할 수 없지만 언젠가 주님 앞에서 다시 만난다는 성경의 약속은 그 모든 슬픔을 극복할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은 채 죽은 사람의 집에 문상 가는 일은 참으로 난처하고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분명히 그 죽은 사람의 영혼이 천국이 아닌 지옥으로 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슬픔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 유족들에게 그들의 슬픔에 마치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죽은 가족이 지옥에 갔다고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께서 당신의 죽은 가족을 구원해주실 것이라고 거짓말할 수도 없으니 참으로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위로하러 갔으나 “얼마나 슬프십니까?” 하고 말한들 무슨 위로가 될 것이며, 그저 단순히 “위로를 받으십시오” 하고 말한들 무의미하고 무책임한 빈말이 될 것이 뻔한 일이니 그렇게 말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동안 불신자들이 문상을 가면 무슨 말로 상주와 유족들을 위로하는지 매우 궁금했습니다. 언젠가 제 친척 중 한 분에게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에게는 상가에 가서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합니까?”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그분의 대답은 “분명한 말을 하지 않고 끝말을 얼버무리는 것”이라고 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고, 얼마나 ~~~하십니까?”

성경에서 하나님은 미련한 자의 마음은 잔칫집에 가 있고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상갓집에 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전7:2). 상가에 가면 사람이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입구라는 사실을 확신하기에, 그러한 사실을 예수는 그의 부활로 증명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것을 끝장내는 죽음에도 불구하고 부활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생명으로 사망이 가져다주는 절망을 이겨내고 더 큰 소망으로 미래를 내다보게 됩니다.

그러한 점에서 사도 바울이 그의 서신서에서 당당하게 외치고 선언한 다음의 말씀은 진정으로 우리에게 가장 비참한 절망 속에서 오히려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소망을 품게 해주는 놀라운 믿음의 근원이 됩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15:55).

위 글은 교회신문 <23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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