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칼럼] 진정한 ‘행복 전도사’

등록날짜 [ 2010-11-02 08:24:26 ]

세상이 주는 행복은 기대만큼 실망도 커

지난 10월 24일, 2만여 명 마라토너가 참전한 춘천 마라톤 대회는 감동의 이야기들로 수를 놓았습니다. 이들 중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한 우울증 환자의 완주였습니다.

‘전문직 종사자인 30대 남성 김 씨가 과다한 업무 스트레스로 우울증에 걸렸다. 그런 그에게 주치의는 달리기를 권했고 그때부터 김 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한강 변을 20여Km 달렸다. 그리고 이번 춘천 마라톤에서 완주에 성공했다.’ 대략 이러한 내용입니다. 처절한 자기와의 싸움으로 극복해야 하는 약 42Km의 기나긴 코스를 삶에 패배한 우울증환자가 완주해냈다는 것이 큰 감동의 울림을 주었습니다. 사실 이외에 우리 주변에는 감동을 자아내는 인간 승리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이 승리의 주인공들이 지닌 본질적인 힘의 원동력은 바로 ‘행복의 추구’이지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참으로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크게는 거대한 개혁에서부터 작게는 행운의 상징, 네 잎 클로버 잎사귀를 책갈피 사이에 소중히 간직하는 것까지…. 그러나 행복은 ‘갈망하는 자의 품에 붙어 있지 않는다’라는 것이 인간의 불행입니다.

행복이란 놈은 참으로 매정해서 그것을 잡았다고 느끼는 순간 벌써 우리는 그 경계선 밖으로 밀려납니다. 그래서 행복에 대한 고백은 늘 과거형이나 미래형이며 그것은 우리가 되돌아보거나 쫓아가는 대상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 역사상 가장 풍족한 이 시대까지도 행복에 대한 사람들의 갈증은 증폭되었고 그것을 잃고 절망할 때 생을 포기하는 일까지 자주 벌어집니다.

그간 우리 사회 유명인들의 자살, 특히 최근에 세인들을 놀라게 한 세칭 ‘행복 전도사’ 최윤희 씨 부부의 자살도 그에 해당하겠지요. 이들 모두는 ‘삶에 대한 열심, 돈과 명예’라는 세상의 행복 조건들을 소유했던 터라 그들의 마지막 선택이 주는 안타까움의 파장은 더욱 컸습니다. ‘행복에 대한 욕망이 컸던 만큼 그 상실의 상처도 깊었다’는 것이 그 죽음의 원인일 겁니다. 이것이 ‘열심이라는 벽돌로 쌓은 행복의 성’이 지닌 허점이며 인간의 원초적 불행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불행에 대한 해법을 예수께서 2000년 전에 내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행복 조건을 8가지로 제시하셨지요. 그 중 첫째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요5:3)입니다. 즉, 마음의 탐욕을 버리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에게 인간이 소망하는 행복의 극치 ‘천국’을 ‘저희 것’이 되게 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행복을 ‘소유’하게 하신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내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고 그분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 결과 행복은 과거형도 미래형도 아닌 늘 공급해주시는 현재의 풍성한 복으로 변화되지요. 이 선물을 받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그분 앞에 무릎 꿇고 나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치하신다는 것과 그 통치 속에 나를 의탁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이는 일뿐입니다.

이 믿음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은 가슴 아픈 사연이 줄을 잇는 현실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행복을 전하는 진정한 ‘행복 전도사’들이 우리 주변을 또 다른 감동 스토리로 풍성하게 수놓기를 소망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1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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