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칼럼] 칠레 광산 ‘막장’과 드라마 ‘막장’

등록날짜 [ 2010-11-08 21:46:27 ]

인간 승리 환호 속에 우리의 삶 반성하게 돼
예수의 삶처럼 낮아지는 모습 세상에 보여야

얼마 전 칠레 북부 산호세 광산에 33명의 광부가 매몰되었다는 비보는 예기치 못한 희망과 기대로 바뀌었다. 막장 한 대피소에 그들 모두가 생존해있었기 때문이다. 17일 만에 그들 모두가 안전하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고, 그들이 보내온 영상에는 웃고, 안부를 전하고, 카드도 즐기는 안심할 만한 모습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칠레 정부와 세계 각국이 힘을 모아서, 매몰된 지 69일 만에 그들의 귀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막장 안에 갇힌 사람들은 서로 격려하고 배려하였고,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을 진심으로 격려하고 그들을 살릴 방법을 모색하였다. 그러므로 그들 모두가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온 것은 ‘함께 도운 사람들’의 승리를 보여준다. 그들의 성공적인 귀환은 한 사람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이룬 것이기 때문이다.

막장에서 들려오는 희망의 소식에 비하면, 요즈음 우리 사회의 경향을 반성하게 된다. 사회적 분위기와 특성을 드러내는 바로미터 중 하나가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는 사람들의 구미를 끌 수 있는 각종 다양한 주제나 형식을 만들어내며, 그것을 통해서 세태를 반영한다. 이러한 드라마의 요즈음 트렌드는 단연 ‘막장’이다. 막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불만을 터트리기도 하였지만, ‘막장 드라마’라는 말이 이미 보통명사화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막장의 사전적 의미는 ‘갱도의 막다른 곳’이다. 폐쇄 공간인 갱 안에서의 막다른 곳이니, 출구가 없는 것, 막바지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막장이 소위 ‘바닥’의 의미를 갖는 것은, 막다른 곳에 다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또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막장 드라마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 어떤 일이라도 하는 사람들로 난무한다. 텔레비전은 언제나 약한 사람을 짓밟고 이용하고, 권모술수를 부리고, 자신의 힘을 키우는 데만 혈안이 된 사람을 계속해서 쏟아 내고 있다.

그러나 칠레의 어느 막장에서 꽃핀 희망을 보면, 그곳이 막장이라서 다른 좋은 방법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진실이 아닌 듯하다. 생명의 희망을 싹 틔웠던 칠레 막장에는 드라마에 나오는 극악한 현실은 존재하지 않았다. 반면, 오히려 사방이 뚫려 있는, 온갖 가능성이 열린, 이 사회 속에는 막장의 흥취가 가시지 않는다. 막장은, 그곳이 막장이어서가 아니라, 막장에서 통용되는 방법 때문에 오명(汚名)을 얻는다.

그러므로 칠레의 막장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인간 승리라고 환호하는 즈음에, 우리 삶의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이익을 위해서 짓밟았던 수많은 사람의 삶,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 썼던 무모한 수단과 방법들 때문이다.

우리의 비루한 삶에 비추어보자면, 자신을 위해서 자신이 가진 힘을 쓰지 않은 예수님의 삶과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죽음, 그것은 진정으로 좁은 문인 듯싶다. 그러나 그 좁은 문만이 우리가 우리 삶의 터전을 막장으로 만들지 않을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 함께 좋은 삶의 모습을 만들 수 있는 길, 막장을 탈출할 수 있는 길, 그 길을 다시 생각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21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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