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11-16 22:26:00 ]
복잡하고 어려울수록 근본 중요
성령 체험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맨발로 걸을 수 있는, 대전에 있는 황토 숲 속 길 한 곳에 다녀왔습니다. 기업인 한 분이 헌신하여 양질의 황토를 뿌려놓아서 신을 벗고 마음껏 걸을 수 있는 길입니다. 부드러운 흙의 질감을 느끼기에는 내 발이 그동안 너무 호사(?)했는가 봅니다. 낭만적인 기분과 감촉보다는 오그라드는 발가락과 예민해지는 발바닥 신경에 집중하다 보니 초입에서는 주변 경관을 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어느 정도 걸으니 몸도 더워지면서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 앞에서 맨발로 걷는 모습이 편안해진 것이지요. 깊은 호흡도 하면서, 동행한 아내에게 이곳에 자주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지키기 쉽지 않은 약속도 했습니다. 어쨌든 그날 숙면(熟眠)을 취했습니다.
생명을 주는 자연, 건강을 주는 자연, 쉼을 주는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결국 ‘근본으로 돌아갈 때 회복한다’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 심령은 어디로 돌아가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듯이(창2:7)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받으라고 선포하십니다(요20:22). 성령 체험은 새로운 창조며 우리의 근본입니다. 유대인은 그리스도인을 자신들의 별종(別種)이라고 간주하기도 했습니다. 성령의 사람 스데반의 순교는 바로 이 유대인들의 박해에 따른 것입니다. 유대교와 기독교를 구분하는 것은 바로 ‘성령’이었습니다. 성령이 이 두 집단의 차이를 만들어 냈듯이 성령 체험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은 다른 종교인과 구분됩니다. 오직 성령만이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고, 수많은 경제와 정보 전쟁, 타 종교와 이단과 사이비가 난무하는 현장 속에서 우리를 지켜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순절 성령 체험을 한 베드로가 외칩니다.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
성령 체험은 바람처럼, 불처럼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습니다. 영적인 일은 육적인 현상을 통해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답답하고 힘들고 괴롭고 슬플 때 돌아갈 체험이 있는지, 기쁘고 즐거울 때 돌아가 함께 나눌 그 체험이 있는지를 생각해봅니다.
강의 시간에 학생들과 토론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복잡할수록 성경으로 돌아가자. 앞으로 나갈수록 성경으로 더 나아가자.”
그렇습니다. 성경은 이 시대가 성령 시대이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알파와 오메가이심을 일깨워줍니다. 성령 체험의 현장이 우리의 고향이고 우리를 회복하는 곳입니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때 메마른 심령이 회복하듯이, 땅의 신을 벗고 근본으로 돌아갈 때 새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그곳, 바로 성령님께서 우리를 감싸는 그곳이 거룩한 장소이고 우리의 돌아갈 본향입니다. 새삼스럽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 주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3:5).
위 글은 교회신문 <21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