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03-03 13:09:22 ]
주어진 환경에 그런대로 안주하는 삶 버리고
인생 계획에 맞춰 다시 일어설 의지 보여야
나에게 지금까지 가장 인상적인 영화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빠삐용(Papillon)’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 작품은 탈옥수 앙리 샤리에르의 자서전을 영화화한 것이다.
간단히 요약하면, 주인공 빠삐용은 살인혐의로 종신 징역형을 받고 지독한 더위와 독충 그리고 가혹한 중노동에 시달리며 자기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탈옥하지만 실패를 거듭한다. 빠삐용의 탈옥, 체포, 탈옥, 체포의 기구하고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진다. 결국 그는 절대로 탈주 불가능한 섬인 ‘악마도’로 보내진다. 그가 절박하게 바라는 것은 자유였다. 13년간 10번 탈옥을 시도하다가 마침내 자유를 찾는다. 주인공의 강한 의지, 무서울 만큼 강인한 집념과 실행력에 모두가 묵직한 감동을 받고 영화관을 나온다.
사방이 바다로 막힌 작은 섬. 죄수들에게 이 악마도의 실제 간수는 거센 파도다. 그는 섬을 둘러보며 생각한다. 어딘가에 반드시 길이 있을 것이다. 이미 머리가 세고 이가 빠지고 고문으로 다리를 절룩거리지만 빠삐용의 집념만은 아직 꺾이지 않았던 것이다. 시험 삼아 야자열매를 채운 포대를 바다에 던져 본다. 포대는 바다로 나가지 못한 채, 파도에 밀려 바위에 부딪히자마자 산산조각이 난다.
그러나 집요한 집념의 화신인 그가 드디어 탈출의 길을 발견한다. 즉 섬 쪽으로 세차게 몰아치던 파도가 주기적으로 한 번씩 바다 쪽으로 밀려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도 그 주기가 아주 정확했다. 그는 주저 없이 계획을 세우며 몇 번째 파도에 허점이 있는지 관찰하여 정확한 시간과 지점을 확인한다. 빠삐용은 동료 죄수인 드가에게 계획을 설명하고 함께 탈출하기로 했지만, 마지막 순간 드가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한다. 용기와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빠삐용은 드가를 남겨 둔 채 야자열매 포대를 끌어안고 끝도 보이지 않는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다. 그리고 파도를 타고는 미끄러지듯 바다로 나아간다. 그는 망망한 바다 한가운데 낡은 야자열매 포대 위에 엉거주춤 누워 목청껏 소리친다. “난 자유다! 이놈들아! 난 자유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가슴 찡하게 여운으로 남아 생각을 가다듬게 하는 내용이 있다. 무고한 죄로 고도(孤島)의 감옥에 갇힌 빠삐용이 어느 날 꿈을 꾼다. 그곳은 법정이다.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무죄를 강변한다. 재판관들이 자기를 지켜보는 데서 빠삐용은 자신이 포주를 죽인 살인범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재판관들도 그건 자신들도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럼 나의 죄는 무엇인가?”라고 묻는 빠삐용에게 재판관은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의 죄는 인간으로서 가장 부끄러운 죄, 즉 인생을 낭비한 죄다.” 그리고 이렇게 판결한다. “너는 유죄다. 그 감옥 안에 주저앉아 길든 채 시간을 낭비하는 너는 유죄다. 그리고 그 죗값은 죽음이다.” 이 판결에 주인공은 힘없이 중얼거리는 독백으로 승복한다. “그래 맞아, 나는 유죄야, 여기에 주저앉아 시간을 낭비하는 나는…”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여유를 내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사용하고 낭비해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내 인생의 기간, 생명의 수명은 정해져 있고 그동안 이루어야 할 사명과 삶의 의미와 가치가 주어져 있다.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께 일생을 어떻게 살다가 왔느냐는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그때 낭비한 시간에 대하여 모든 인간은 그저 “나는 유죄입니다. 무수한 날을, 그 많은 시간을 낭비한 죄!”라고 머뭇거릴 것이다.
그렇다. 인간이 짓는 무수한 죄 중 가장 부끄러운 죄가 인생을 허비하고 낭비하고 시간을 그냥 흘려버린 죄다. 나의 죄명이 무엇이냐고 항변하는 빠삐용에게 재판관이 ‘인생을 낭비한 죄’라고 답하는 말에 고개를 숙이는 빠삐용의 모습을 생각하다 보면 나는 가슴이 뜨끔할 때가 잦다. 지나온 길은, 지나쳐 버린 시간은 앞으로 돌릴 수 없다. 그러기에 지금 여기서부터 바로 미래를 향해 출발해야 한다.
후회와 헛된 반성으로 또다시 시간을 낭비하면 그는 여전히 죄를 짓고 있는 것이며 그것의 끝은 망하는 것이요, 죽음이다. 올해는 시간을 낭비하여 죄를 범하는 어리석음을 벗어버리고 그 시간과 여유를 알찬 의미와 보람으로 가득 채우는 삶 되기를 기원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23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