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07-20 14:20:36 ]
성도는 주께서 맡긴 사명과 책임 다하는 것
거룩한 삶의 은밀한 대적 ‘게으름’ 이겨내야
행복한 성도는 주님 말씀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내세에서도 행복한 사람이다(딤전4:8). 일반 사람들도 성공하려고 자기 일에 충성을 다 한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맡은 일에 탁월하게 열심히 하는 것을 본다.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는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교회다. 연세중앙교회는 늘 담임목사와 사모 그리고 전 성도들이 온 힘을 다해 최고로 하나님께 충성하고 있음을 본다. 이번에 안수 받는 안수집사 34명과 권사 57명은 성령의 열매가 풍성하고 충성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일반 서적 중에 『혼(魂) 창(創) 통(通)』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세계 최고의 대가들을 만나서 그들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그 결과를 기록한 내용이다. 대가들은 저마다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여 생각이 다르지만 그들이 이야기하는 성공과 성취의 비결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의 탁월함의 비결은 혼(魂) 창(創) 통(通)이다.
요약하면 개인이든 조직이든 가슴 깊숙이 혼을 품고, 늘 새로워지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마음과 마음이 하나로 연결되어 흐르는 통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혼(魂)은 가슴 벅차게 하는 비전을 품고 이 비전이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며, 창(創)은 끊임없이 “왜?”라고 묻고 두드려서 결국 열리게 하는 것이고, 통(通)은 만나고 또 만나고 듣고 또 잘 듣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달란트 비유에서 성도들이 지녀야 할 중요한 덕목을 가르치신다(마25:21~27). 또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지어다”라고 칭찬하신다. 바로 충성의 기초는 착함과 임무수행임을 알 수 있다. 탁월한 성도의 특징은 충성에 있다. 예수께서는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둔 종을 이렇게 책망하신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마25:26).
행복한 성도는 주님의 말씀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 성도의 탁월함은 맡기신 사명과 책임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위에서 볼 때 충성의 반대말은 불충성이 아니라 게으름이다. 거룩한 삶의 은밀한 대적은 게으름이다. 게으름은 단순한 인간 성품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에 뿌리내린 그릇된 자기 사랑이다. 김남준 목사가 쓴 『게으름』에서 말한‘게으름과 작별을 위한 자기 점검’을 질문 형식으로 제시해보았다.
1) 세워 놓은 계획에 따라 규모 있게 시간을 사용하였는가?
2) 정해 놓은 기도 시간을 지켰는가?
3) 기도 시간에 열렬하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하였는가?
4) 성경 읽는 시간을 정해 두고 지키고 있는가?
5)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데 부지런하였는가?
6) 공예배에 참석하였는가?
7) 준비된 마음으로 공예배에 나아가, 선포되는 말씀에 집중하였는가?
8) 직장생활(학교생활)을 근면하게 하였는가?
9) 부주의하게 일 처리를 하지 않았는가?
10) 필요 이상 수면을 취하지 않았는가?
11) 소중한 시간을 아침 침상에서 소비하고 허둥지둥 하루를 시작하지 않았는가?
12) TV를 보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는가?
13) 불필요한 정보나 오락을 위한 인터넷 사용에 과도한 시간을 소비하지는 않았는가?
14) 취미 활동(스포츠, 책, 낚시 등)에 과도한 열정을 소비하지 않았는가?
15) 불필요한 만남을 유지하느라 시간과 물질을 허비하지 않았는가?
16) 잡담이나 농담으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는 않았는가?
17) 헛된 공상과 불필요한 생각들에 마음을 빼앗기지는 않았는가?
18) 과식하지는 않았는가?
19) 먹고 마시는 일에 과도한 욕망을 가지고, 많은 시간과 돈과 생각을 사용하지는 않았는가?
20) 잠들기 전 하루를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내일을 계획하는 시간을 가졌는가?
나는 곰곰이 생각해본다. 나와 이 글을 읽는 교인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가 달란트 비유에서처럼 하나님께 충성하는 성도들이라는 칭찬을 듣기를 소원해본다(계2:10).
위 글은 교회신문 <25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