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11-15 14:53:46 ]
세상에서 인정받는 지혜는 결국 한계가 있어
거룩한 꿈과 소망을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야
얼마 전에 스티브 잡스가 죽었습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양부모에게 입양돼 자라났으며, 젊은 시절에는 교회에서 제공하는 공짜 음식을 먹기 위해 몇 킬로미터나 걸어가야 했고, 또 대학도 중퇴해야 할 정도로 가난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천재적인 발명 정신과 도전 정신으로 컴퓨터,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만들어 현대인들의 삶에 여러 면으로 편이를 제공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토머스 에디슨, 윌리엄 벨 등과 같이 세계사에 남을 발명가 중에 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가 2005년에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한 연설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파란만장한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젊은이들에게 던져준 진솔한 조언들은 많은 사람에게 인생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가 췌장암에 걸린 지 일 년 정도 후에 자기에게 빨리 닥치게 될지도 모르는 죽음을 생각하며 젊은이들에게 던진 조언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옵니다.
“내가 곧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나로 하여금 인생의 큰 결단을 내리게 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외적인 기대들과 모든 자부심과 수치와 실패에 대한 모든 두려움 등은 죽음 앞에 사라져버리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게 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당신이 무엇인가 잃게 될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것을 피하게 하는 최선의 방책입니다. 당신은 죽음 앞에서 이미 적나라하게 되어버립니다. 당신의 마음을 따라 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삶의 최고의 발명품은 죽음입니다. 당신의 생명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삶을 살면서 그것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를 용기를 가지십시오.”
저는 스티브 잡스의 이 연설을 들으면서 솔로몬 왕이 이스라엘 백성과 특히 젊은이들에게 인생에 관해 조언해준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전11:9).
그러므로 한 시대 최고의 발명가요 사업가로 인정받았던 잡스나, 한 시대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스라엘의 최고 왕이요, 행정가요, 지혜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았던 솔로몬 왕이 공통으로 조언하고 있는 이 교훈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적용할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 한 번은 죽게 되고 그것이 빨리 다가올 수도 있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매일 우리의 삶에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분별하고 조정하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서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 것을 실행하는 것이 삶의 행복이요, 즐거움이라는 사실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을 따라 살라”는 잡스의 도전이나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는 솔로몬의 조언은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우리에게 주어진 매일의 귀한 시간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가운데 허비하거나 소극적, 수동적으로 살아가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쳐줍니다.
오히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심어주시는 거룩한 꿈과 소명을 이루기 위해 ‘올인’하여 삶 전부를 걸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누리며 살 것을 도전해줍니다.
우리가 살아온 날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날이 분명히 있다는 전제로 매일 주님께서 우리에게 행하도록 맡겨주신 영혼 전도, 선교, 기도 그리고 섬김의 사역들을 감당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그것을 인생 최고의 즐거움으로 간주하고 살아갈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심어주시는 바대로 살고 있습니까? 요즈음 우리가 원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요즈음 우리는 무엇을 보며 즐거움을 누리고 삽니까?
시시때때로 질문하면서 우리의 삶을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6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