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12-20 17:09:01 ]
삶속에 뿌리내린 고정관념은 영적 성장의 장애
세상을 답습하는 신앙생활은 철저히 경계해야
한여름에 들려오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순간, ‘아차, 이곳이 호주 시드니지!’라는 현실인식을 했습니다. 남반구에 위치한 호주는 우리나라 사계절과는 정반대로 이제 무더운 크리스마스 철입니다.
처음 호주에 왔을 때, 투명한 밤하늘에서 북극성과 북두칠성을 찾았습니다. 이곳 남반구에서는 그것들 대신 남십자성을 찾아야 하는데 말이지요. 또 이곳은 겨울에 북향집이 햇볕이 잘 들어 따뜻합니다. 운전석도 차 오른쪽에 있고, 주행 차선은 도로 왼쪽입니다. 같은 하늘 아래 있지만 계절도, 사는 방식도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성탄절이 사회 문화와 하나 된 현상 속에서 성탄의 의미를 되새겨 보며 기독교 3대 특징을 나름대로 찾아보았습니다. 첫째, 사람들의 양심이나 문서에 쓴 율법이 아닌 믿음을 통한 구원. 둘째, 다신교나 혼합종교가 아닌 유일신 경배, 셋째, 형상(우상)을 만들지 않는 신앙입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바울이 헬라-로마의 문화권에서 복음을 전파할 때 당대에 만연한 고정관념을 넘어뜨리고 세워야 할 신령한 고지였습니다.
바로 당대에 ‘믿음’이라는 개념은 헬라의 이원론에 기초해서 행함과 분리되는 하나의 사상이나 관념일 뿐이었습니다. 여러 신을 동시에 섬기는 분위기에서 한 신만을 섬긴다는 것은 무신론을 의미했습니다. 또 형상 없는 신은 상상할 수 없었기에, 신들은 모두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이러한 당대의 고정관념은 문화의 형태로 삶 속에 깊은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복음과 혼동할 뿐만 아니라 충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 같은 고정관념은 신앙생활 하면서 늘 경계해야 할 요소입니다.
세상의 문화 속에 고착한 ‘예수 탄생의 잔치 분위기’에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피 흘리려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成肉身)의 은총’을 혹시라도 놓치지 않았는지 점검해 봅니다. 남십자성 대신에 북극성을, 북극성 대신에 남십자성을 찾는 것은 아닌지 자문(自問)해 보는 것입니다.
국가만 바뀌어도 다른 삶의 방식이 있듯이, 신앙생활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도 바꾸는 대전환이기 때문에 생활에서, 인격에서 변화가 있는 새로운 방식의 삶입니다. 오직 성령께서만 이 변화를 가능하게 하십니다.
성령을 통해서만 예수를 주님이라고 시인할 수 있고(고전12:3;롬8:16), 성령을 통해서만 유일하신 하나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으며(고전2:9~10,12), 형상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고전3:16). 성탄절은, 그리고 예수의 탄생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그 예수께서 성령 하나님으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
위 글은 교회신문 <27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