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칼럼] 인간적 꿈과 소명적 꿈의 역학

등록날짜 [ 2012-05-29 10:35:52 ]

목회자가 되기까지 꿈과 비전의 소망
인생 여정에 말의 힘은 대단히 크다

한 소년에게는 꿈이 있었다. “주님이 함께하시면 언젠가 목회를 하고 모범적 교회를 세우겠다”고. 그것은 어려서부터 부모님께서 심어준 꿈이기도 했다.

목사님이신 아버지는 어린 자식에게 “너는 엄마 아빠가 신앙이 가장 좋을 때 낳아서 하나님께 바친 장남이기 때문에 크면 꼭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자식과 한 번 상의한 적도 없고 자식이 그것을 인식하기도 전에, 한나가 하나님께 사무엘을 바쳤던 것처럼 말이다. 그 소년은 바로 지금 글을 쓰고 있는 필자다.

그러나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꿈과 비전에 대한 갈등과 혼돈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목사 아들 노릇하기가 너무도 어렵고 그 와중에 많은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교회 사택 앞집에 동갑내기 집사 아들이 살았는데 어쩌다 싸우면 목사 아들의 역할은 항상 지는 거였다.

한번은 내가 그 친구와 싸우다가 살짝 물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 친구 어머니 집사가 난리를 치고 내가 심하게 혼난 적이 있던 후부터 나는 목사 아들이라는 약자로 살아야 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목사 아들을 더욱 초라하게 만드는 사건이 있었다. 아버지 교회에 ‘한’ 장로라는, 경제적으로 잘 사는 재정부장(교회 회계)이 있었다.

목사님 봉급날이 되면 봉급을 주어야 생활을 할 것인데 절대로 봉급을 정해진 날에 갖다 주는 법이 없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나에게 종이쪽지에 얼마의 돈이 필요하니 보내달라고 심부름을 시키셨다. 그 쪽지를 가지고 그 장로가 운영하는 큰 상점에 가면, 나를 거지 취급을 하며 한 참을 서 있게 하다가 교회 돈인데도 자기 것을 주는 것처럼 던져주듯 했다. 그것을 받아들고 오던 나의 상처는 잊지 못할 비극이었다.

그 장로가 우리 아버지를 얼마나 괴롭고 힘들게 했는지 나는 알고 있다. 그 부인 집사는 한술 더 떠서 우리 어머니에게 억울한 비난을 하고 말로 괴롭힌 것은 일일이 말로 형용할 수 없다. 어머니가 울면서 교회로 달려가 주님께 부르짖던 모습은 나의 어린 마음에 목사가 되고자 하던 꿈을 산산이 부수트리기에 넉넉했다.

목사 아들로 살아오며 비참했던 생활이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 1학년에 이르는 동안 소명이나 섭리적 꿈이 아닌 인간적 꿈으로 대치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즉, 나는 커서 돈을 많이 벌어 이 세상에서 목사님을 가장 잘 받들고 섬기는 훌륭한 장로가 되는 것으로 내 꿈을 각색해 목회자의 길을 포기하기로 했다. 나는 의사가 되기 위해 우선 공부를 열심히 했다. 중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한 나는 계속 수석 자리를 지키며 결국 당시 명문이던 대전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시골에서 대도시로 유학을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로 진학해 부모님 슬하를 떠나 자유로운 하숙생활을 했고 처음에는 교회도 성의 없이 다니며 공부에만 전념했던 것 같다. 그렇게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자 좀 자유로워졌고 사춘기 방황에 막 빠져갈 찰나, 하나님께서 나를 강력하게 장악하시는 사건이 일어났다. 소위 말하는 중생, 즉 거듭남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나는 별로 죄가 없다’고 생각하던 내가 ‘나는 죄인 중에 죄인입니다’ 고백하게 되고, 십자가의 구속과 사랑을 깨닫게 되고 성령 체험을 하면서 삶이 완전히 뒤집어진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되고 어릴 적 꿈과 진로로 완전히 되돌아와 오직 주의 종이 되는 길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아니 하나님이 나의 길과 미래를 송두리째 잡아 이끄셨다.

그래서 나는 오직 주의 종으로 선교와 목회를 꿈꾸며 서울신학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 학문의 갈증도 느끼며 연세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고, 더 나아가 미국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신학대학교에서 30년 넘게 교수생활을 하였다. 교수생활을 하면서 거의 모든 보직을 거치며 결국 총장을 역임하였고 무수한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을 경험하면서 무사히 영광스러운 은퇴를 하기에 이른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너는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 나의 뇌리에 박혀 나를 주관하게 되었고, 나도 ‘나는 목사가 될 것이다’는 꿈을 간직하며 어린 시절을 지내왔던 그것이 결국은 다 이루어진 것이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그토록 내가 원했던 목회의 길보다는 하나님께서는 교수의 삶으로 끈질기게 인도하셨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나는 목회의 꿈을 저버리지 않았고 그런 마음을 강의 중에 살포시 누설하기도 하고 기도하기도 하며 목회의 길이 구체적으로 열리면 바로 교수직을 버리고 교회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학교에 붙잡아 놓으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은퇴 후 목회의 길이 열리게 된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9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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