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3-12-24 10:03:22 ]
예수 성탄 후 고난받으신 의미를 되새기며
즐겁고 신 나기 이전 그의 생애 돌아보아야
욥기를 읽다 보면, 극심한 고난에 처한 욥이 자신이 태어난 ‘그날’을 저주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러나 태어난 날을 저주하는 욥기서 3장 내용은 오히려 ‘그날’이 지닌 경이로움을 보여줍니다. ‘그날’의 의미를 이처럼 잘 보여주는 본문은 없으리라고 생각할 만큼 말입니다.
다만 욥에게 문제가 된 점은, 현재 겪는 고난이 극심해서 ‘그날’의 찬란한 의미가 퇴색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욥기를 읽다 보면 삶에서 중요한 날이 언제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생명이 잉태하던 날? 그 생명이 세상에 나온 날? 아마도 가장 중요한 날은 그 생명이 쌓아온 수많은 나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바로 우리가 ‘인생’(人生)이라고 명명하는 그 시간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날’의 소중함을 생각하다 보면, ‘그날 이후’로 이어져 온 수많은 시간이 지닌 의미와 소중함을 돌아보게 됩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태어나신 ‘그날’도 예수가 살아온 ‘그날 이후’와 떼어서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차근히 생각해 보면, 예수가 태어난 ‘그날’이 소중한 이유는 예수가 살아온 ‘그날 이후’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태어난 ‘그날’은 그토록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날’ 못지않게 중요한 날은 ‘그날 이후’에 나타난 예수님의 삶입니다. 우리를 살리고자 자신을 내어준 그 삶 말입니다. 그 삶이 아니었다면, 태어나신 ‘그날’의 의미는 사그라졌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살리려 이 땅에 오셨고, 우리를 대신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살아온 ‘그날 이후’는 예수가 태어난 ‘그날’이 지닌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탄생을 즐거워하다가, 자꾸 멈칫하게 됩니다. 성탄인 ‘그날’을 그저 기쁘게만, 즐겁게만 보내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성탄’은 ‘성탄 이후’를 기억하며 준비하는 시간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성탄 이야기에 나오는 동방박사들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나신 ‘성탄’을 축하했을 뿐 아니라, 예수의 ‘성탄 이후’를 지킨 자들입니다. 그들은 헤롯이 내린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헤롯에게 가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할 위험을 스스로 감수했습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예수께서 나신 ‘그날’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묻게 됩니다. 나는 어떻게 예수의 ‘그날’을 지킬 것인가? 그리고 돌아봅니다. 예수의 ‘그날’을 지키며 예수의 ‘그날 이후’를 따라갔던 수많은 사람의 눈물과 기도를 말입니다.
그리고 다시금 묻습니다. 내가 오늘 맞이하는 예수의 ‘그날’은 예수를 따르는 나의 ‘그날 이후’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예수의 ‘성탄’에 흥분한 나머지, ‘성탄 이후’에 예수가 받은 고난과 예수의 ‘그날 이후’를 지키며 따랐던 사람들의 헌신을 잊는다면, 나의 ‘그날 이후’가 더는 빛나지 않을 듯하기 때문입니다.
김호경 교수
서울장신대 신학과
위 글은 교회신문 <36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