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10-14 15:26:43 ]
‘루터 95개조 반박문’ 발표의 날로 기억되지만
교회는 지금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개혁 중
매년 10월만 되면 잊히지 않고 들리는 노래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잊혀진 계절’이라는 제목의 대중가요다.
잊힌 것을 말하는 노래 제목과 달리, 노래가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이유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이라는 가사 때문이기도 하다. 매년 어김없이 돌아오는 10월의 마지막 밤은 이 노래를 잊으려야 잊을 수 없게 만든다.
1982년에 발표된 ‘잊혀진 계절’보다 10월의 마지막 날을 훨씬 더 잊을 수 없게 하는 사람은 16세기 독일의 마르틴 루터다.
비텐베르크 대학교의 성경연구 교수이던 루터는 동료와 함께 교회를 개혁할 방안을 내놓았지만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교 정문에 그 유명한 95개조의 반박문을 공포했다. 성 베드로 대성당 재건축에 쓸 자금을 모으려고 면죄부를 파는 행위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드디어, 루터의 주장이 관심을 끌었고 다양한 대응이 일어났다. 우리가 종교개혁이라고 부르는 시대적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종교개혁이라는 말은 매우 폭넓게 사용된다. 루터의 개혁, 칼뱅의 개혁, 급진적인 개혁은 물론이거니와 개신교의 등장에 반하여 나타난 가톨릭의 종교개혁까지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이라는 말 속에는 루터에 대한 다양한 반응과 오랫동안 심화한 갈등과 대립이 내포되어 있다.
종교개혁으로 말미암은 변화들은, 신학적인 것뿐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인 것을 포함하며, 그 시기는 반종교개혁에 대한 대책으로 1545~1563년까지 개최된 트렌트 공의회를 아우른다고 볼 수 있다. 그 오랜 기간, 루터가 불을 지핀 10월의 마지막 날은 그를 추종하는 자들이나 그를 반대하는 자들에게 모두 끝없는 질문이 되었다. 이날을 어찌할 것인가!
1517년 이후에, 이제까지 한 번도 거른 적 없는 시월의 마지막 날이 우리에게 다시 다가온다. 역사 속에서 드러난 사실처럼, 그 한 날은 종교개혁이 시작된 날일 뿐 그것이 완성된 날이 아니므로 루터가 지향한 개혁정신은 그의 뒤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에 의해서 다양한 모양으로 오늘날까지 지속되었다. 그들이 잊지 않고 기억한 것은, 시월의 그 마지막 날이었다.
루터는 무엇에 항거하고 싶었을까? 루터가 그토록 드러내려고 한 하나님의 은총이 이 땅에 얼마나 충만한가? 루터가 그토록 돌아가고자 한 성경의 의미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그러나 그날을 기억하고 묻다 보면, 언제나 다시 제자리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든다. 루터가 항거하던 그 자리 말이다. 하나님의 은총을 가로채고 자신의 낯을 세우는 사람들로 교회가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의 의미를 말하기 전에, 자신의 목적에 하나님의 뜻을 덮어씌우는 사람들로 교회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라는 말이 무색하게, ‘나를 따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소리로 교회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제 교회는 시월의 그 마지막 날을 다시 기억했으면 좋겠다. 달콤한 노랫말 속 그 밤보다, 결단에 찬 그 한 날의 의미에 다시 응답했으면 좋겠다. 그날이 ‘잊힌 시간’이 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김호경 교수
서울장신대 신학과
위 글은 교회신문 <40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