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12-15 19:18:59 ]
목숨을 걸고 주님 사랑하는 모습 갈수록 희귀해져
예수를 인생의 주인으로 바꾸는 것이 복음의 진수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복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에 그리스도인들이 목숨처럼 사랑하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분명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저는 모태에 있을 때부터 교회에 다닌 사람이지만 대학교 2학년 때 비로소 예수를 믿어 예수께서 자신의 보혈로 영원히 용서해 주셨고,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 주셨고, 또 구원받은 자로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복음을 사랑했고 복음을 힘껏 전하는 삶을 평생 살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토록 목숨 걸고 자랑하며 전하던 복음에 문제의식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첫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정말 복음이 그런 것이라면 믿고 싶다고 하면서도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더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는가’였습니다. 정말로 믿고 싶지만 믿어지지 않는다는 사람들에게 해 줄 말이 없어서 그저 “믿음은 선물이라고 했으므로 믿음을 선물로 달라고 기도하라”는 말밖에 해 줄 말이 없었습니다. ‘믿고 싶다는 사람에게 결코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 줄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이 항상 맴돌았습니다.
둘째, 복음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예수를 마음에 영접한 사람들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기뻐하지만 그들의 삶이 제대로 변하지 않는 문제였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성경을 보면 볼수록 더욱 커졌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믿는 순간부터 다른 사람에게 예수를 전했으며, 믿는다는 이유 한 가지만으로 지하묘소를 전전하면서도 핍박받는 일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감당했습니다.
반면, 오늘날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주님을 사랑하며 복음을 전하는 모습이 너무도 희귀하다는 사실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복음의 메시지 그 자체에 무언가 2% 부족한 것이 있지 않은가’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결국 성령께서 도와주셔서 의문이 풀렸고 그 부족한 2%를 알고 또 해결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 부족한 2%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죄에 대한 문제입니다. 죄는 동료 인간들 사이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마귀처럼 자신이 “하나님과 같아지겠다”며 일으킨 반역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 주인 된 것이 죄입니다. 근원적인 죄란 하나님을 상대로 짓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둘째,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하늘 성소에 들어가셔서 영원한 제사를 단번에 드리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영원히 사해 주셨습니다(히8~10장).
셋째, 예수께서 하나님 자신으로서 우리를 살리려 죽으신 것은 부활로 증명되었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그가 하나님으로서 자기 피를 흘려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다는 것을 명백하게 증거합니다.
넷째, 우리가 회개한다는 것은 자신이 주인 된 죄, 곧 자신을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올려놓고 자기 마음대로 살던 죄를 뉘우치고 고치는 것입니다.
다섯째, 예수를 영접한다는 말은 그분을 다시 하나님으로, 주님으로 모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하나님이라는 것과 그분이 진정으로 우리의 주님이라고 믿는 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제 예수를 단순히 구세주로서가 아닌, 주님으로 영접함으로써 자기 인생의 주인을 바꾸는 것이 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요, 바른 반응입니다. 그 부족하던 2%는 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부활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붙잡는 것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로 주신 것”(행17:30~31)입니다. 그분이 부활하신 것에 우리가 모두 열광하는 이유는 예수의 부활이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증거이기 때문이며,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그분이 하나님으로서 우리를 살리려고 죽으셨다는 사실을 확증해 주기 때문입니다.
지난 3년 동안 저는 신학생들에게 이 2%가 채워진 ‘부활 복음’을 가르치고 전도하도록 훈련한 결과 놀라운 일들이, 초대교회 같은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년퇴임을 앞둔 저의 신학교 교수 생활 마지막 부분들은 더욱 감격스럽고 흥분된 시간이었습니다.
박영철 목사
침례신학대학교 명예교수
위 글은 교회신문 <41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