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11-10 16:18:10 ]
그리스도인이라면 말씀대로 사는 습관을 길러
하늘나라에 속한 사람으로 익숙한 삶을 살아야
그리스도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 세상은 사단이 지배하는 어두움의 세계이기 때문에, 또 ‘이 세상 임금’(요12:31)이라는 이름처럼 사단이 이 세상 모든 근본 질서를 뒤집어 놓았기에 빛의 자녀인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매우 부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의 자녀인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성경에서 가르쳐 주셨지만, 실제로는 성경이 제시하는 삶의 원리가 이 세상 보편적인 원리와 너무 다르고 근본적으로 세상과 반대로 살아가는 방식을 말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원수를 철저히 갚는 것이 똑똑한 사람이 사는 방식이지만, 성경은 원수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오히려 복을 빌어 주라고 말씀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를 좋아하고, 죄짓는 일에 익숙해 그와 반대 방식으로 살아가는 일은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항상 우리가 익숙해 있는 습관에 역행하는 삶을 살아가기란 여간 신경 쓰지 않으면 자연스러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습관이 들었고 익숙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 부닥치거나 상대해야 할 처지에 놓이면 거의 전자동(全自動; Full automatic)으로 죄 된 본성으로 대응합니다. 의도적으로 반대 방향으로 반응하지 않으면, 죄 된 본성적 반응이 순간적이고도 충동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런 점에서 확실히 그리스도인답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매우 부자연스럽고 항상 신경 써야 하는 어려운 일임이 분명합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인답게 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이 참으로 우리 능력 이상으로 어떤 특별한 힘을 요구하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사실상 실천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런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면 거의 율법적인 삶과 다를 바가 없을 터입니다. 그래서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이 아예 세상을 거슬러 살기를 어느 정도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은 근본적으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주인 되었던 죄를 회개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으로 믿는 그리스도인은, 예수와 영원히 연합한 자입니다.
예수께서 죽으실 때 우리도 함께 자기가 주인 된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했고, 예수께서 부활하실 때 그분의 부활과 연합해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따라서 주인이 바뀐 그리스도인에게는 거의 자동으로 그리고 큰 열망과 기쁨 가운데서 주님을 사랑하는 강력한 동기가 성령의 능력으로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와 완전히 하나로 연합했기에 예수께서 기뻐하시는 것, 예수께서 좋아하시는 일, 예수께서 원하시는 바가 곧 그리스도인의 기쁨과 좋아함과 원함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주님께서 원하시고 말씀하시는 것이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아멘’으로 받으며 그 말씀대로 목숨을 걸고 전폭적으로 순종하는 일이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삶이, 예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고 당연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와 같이 사랑의 자발적인 동기가 형성되었기에 즐거움과 기쁨과 충성의 동기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말입니다.
사랑과 충성의 동기는 자기희생적인 삶의 태도를 형성해 주고, 그러한 자기희생적인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을 근본적인 삶의 목적으로 만들어 줍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요한1서 3장 16절에서 말한 바와 같이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도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한 동기와 사랑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습니까? 바로 복음 자체로서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우리 인생의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증명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 굴복함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자기가 주인이던 삶에서 예수가 주인으로 바뀐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지는 거룩하고 의로운 본성적 변화가 발생하므로 하나님 나라의 원리대로 사는 삶이 자연스러운 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부활하신 예수께서 삶의 주인이 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말씀대로 사는 것이 자연스럽습니까? 부자연스럽습니까?
박영철 목사
침례신학대학교 명예교수
주님의기쁨교회 담임
위 글은 교회신문 <45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