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7-02-28 16:46:29 ]
많은 유대인,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줄 정치적 메시야 기대해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의 일이 아닌 영혼 살리는 하나님 일을 위해 오셔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성지순례는 마치 시공(時空)을 뛰어넘어 신약시대로 들어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예루살렘, 나사렛, 베들레헴처럼 익숙한 지명의 지역이 눈앞에 펼쳐지면 켜켜이 쌓인 역사의 흔적에서 당시 모습을 생각하면서 성서시대를 탐구했습니다. 모든 지역이 성서 땅이므로 하나라도 소홀히 지나칠 수 없었지만, 그중 가이사랴 빌립보 지형 구조는 신약시대 배경을 새롭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자기만의 메시야를 원하던 시대
나사렛 예수가 활동하시던 시대는 헬라 문화와 로마 정치가 이스라엘에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메시야(그리스도)를 대망하고 있었지만, 유대인 집단마다 그 기대하던 상(想)이 달랐습니다. 메시야는 반드시 오시는데 어떤 분으로 오시는지 그분이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하는 메시야인지, 경제 문제를 해결해 줄 메시야인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신약성경에 이런 상황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는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질문했고, 베드로는 “침례 요한, 엘리야, 혹은 선지자 중의 한 명”이라고 여론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제자들에게 다시 물었고, 이때 베드로가 답했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예수는 칭찬 대신 베드로에게 함구령을 내리시고 이어서 자신의 고난과 죽음, 부활을 말씀하십니다. 이에 베드로가 항변합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예고였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는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며 베드로를 심하게 책망하십니다(막8:33).
<사진설명>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
‘가이사랴 빌립보’는 로마 황제를 지칭하는 ‘가이사’와 헤롯 대왕의 아들인 ‘빌립’의 이름을 합성한 지명입니다. 특히 이 지역은 헬몬산 자락에 있고 숲과 동굴이 많아 은신하기에 적합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혁명을 도모하던 사람은 이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규합해 예루살렘으로 진군했습니다. 언뜻 보면 당시 제자들은 예수가 이런 시대적 흐름을 따르는 것처럼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물음은 마치 새로운 왕의 출현처럼 보였을 장면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에도 이런 염원이 담겨있습니다. 베드로는 표면적으로 예수를 정확히 고백해놓고도 내면적으로는 아직 그리스도이신 예수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고난을 겪으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실 그리스도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부르고 따랐지만, 예수를 자기 자신과 시대의 필요를 채워주는 소망을 담은 메시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예수 그리스도
마침내 예수께서 하나님 말씀대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어 인류의 죄를 대속하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의 고난, 죽음, 부활, 승천 이후 오순절 성령 강림을 체험한 후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가 세상의 욕망을 충족시킬 분이 아니라, 되레 자기가 예수의 뜻을 이루어야 할 사명자로 바뀐 것입니다. 베드로가 택한 예수가 아니라, 예수가 택한 베드로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시대마다 메시야 같은 지도자를 원합니다. 군사적 메시야, 정치적 메시야, 경제적 메시야, 문화적 메시야 등 다양한 메시야를 대망하고 만들어 내려합니다.
그러나 메시야는 오직 한 분이십니다. 사람의 일을 성취하는 메시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시는 메시야,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지금은 사람의 희망을 채워주는 메시야 염원 증후군에 휘말리는 대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온 세상 주인이신 그분의 뜻(복음 전파)을 수행하는 ‘우리’가 필요한 ‘우리나라’ 대한민국입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8:33~35).
/김선배 교수
침례신학대학교 신약학
위 글은 교회신문 <51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