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칼럼] 고난은 축복으로 가는 통로

등록날짜 [ 2017-10-24 17:34:55 ]

시편 40편을 쓴 시인은 수렁 같은 기가 막힌 사건에 빠져 긴 ‘기다림’을 보냈다. 아마도 이 시인의 ‘기다림’은 하나님의 기도 응답을 기다리는 것이었으리라. 그런데 하나님께서 속히 이루어 주시면 오죽 좋았겠는가. 1절을 보니 표현이 안쓰럽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시40:1).

시인은 기다리고 또 기다렸고 그래도 응답이 없으니 울먹이다가 목놓아 울었다. 기도의 부르짖음이 변하여 울부짖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눈에 보이는 사건 뒤에는 보이지 않는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피어난 꽃의 그림자에 담긴 기다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국화꽃을 한 송이 피우기 위해서도 이런 희생과 기나긴 인내가 필요하다면, 하나님을 향한 나의 소원이 이뤄지는 데 길고 긴 기다림이 왜 없겠는가. 전설적인 야구 영웅 베이브 루스가 홈런 714개를 쏘아 올린 기록 뒤에는 무려 1330번이나 되는 삼진(strike out) 기록이 있다. 수많은 삼진을 당하는 아픔은 홈런을 터뜨릴 기다림이었다. 요셉은 소년 시절 꾼 꿈을 이루려고, 슬프고 쓰라린 형제의 배신과 고독한 노예생활을 견뎠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지만 하나님의 섭리가 분명히 있음을 믿고 그 긴 기다림의 기간을 채운 후 총리가 된다. 시편 40편 시인도 그러했다.


나를 큰 그릇으로 만들고자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부르짖는 안타까운 날들을 있게 하실까.

첫째, 우리의 그릇을 만들려는 섭리다. 인간도 다양한 그릇, 즉 인간됨이 있다. “하나님! 제게 재벌 될 축복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는데 2~3년 사이 그릇도 준비하지 못한 채 성취되면 그는 망할 짓을 하게 된다. 일종의 저주가 될 수도 있다.

큰 인물은 엄청난 축복을 누리면서도 하나님을 진실히 섬기고 겸손하고 자기 관리를 잘할 줄 안다. 그래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으려면 기나긴 훈련 과정이 필요하다. 그릇을 만드는 여정이 있다는 것이다. 그릇이 되기 전에 성급하면 모두 힘들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75세인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후손을 낳을 아들을 주리라고 약속하셨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간절히 기다려도 후손이 없었다. 창세기 15장을 보면 초조한 아브라함은 인간 방법으로 종 엘리에셀을 양자로, 6장에서는 첩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얻어 후사를 삼으려 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 사람은 아니다.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고 계약체결의 의식으로 다시 확인해 주신다. 아브라함과 사라도 인간인지라 몇 번이고 약해지고 쓰러지고 갈등했다. 하나님이 17장과 18장에 나타나서 아기가 생길 것을 약속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고 여러 해 동안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다 21장에 가서 하나님께 약속을 받은 지 25년 만에 아들을 품에 안는다. 이 긴 기간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간절한 마음으로 계속 만났고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더욱 구체적으로 믿게 되었다. 22장에서 어렵게 얻은 독자를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결정적인 신앙 테스트에 합격하여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는 승리를 얻었고 그는 메시야의 선조가 된다.

아마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리라 약속하신 후 10년 만에 이삭을 얻었다면 그는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기는커녕 하나님을 떠나고 배신했을지도 모른다. 아브라함의 위대한 신앙 안에는 25년이라는 안타까운 기다림과 하나님께 대한 지칠 만큼의 몸부림이 있었다. 결국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신앙 성장을, 아들을 바칠 수 있는 때를 기다리고 기다리셨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에겐 지겨운 수렁이 있었고, 역경을 극복한 스토리가 있다. 기다림은 인물을 만든다.


그 많은 고통에 의미가 있었다
둘째, 고난에는 분명한 의미가 있다. 시편 40편 시인은 견디기 어려운 환경과 사건에 빠져서 어찌할 바 모르는 처절한 절규를 내지른다. 한마디로 “기가 막힐 웅덩이(죽음의 구렁)와 진흙 수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웅덩이는 기가 막혀도 몸을 움직이며 발버둥 칠 수 있지만 수렁은 움직일수록 더 깊이 빠져든다. 여기서 그는 부르짖고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셔서 답답하고 억울하고 한심하고 미칠 것 같은 암담함에 기가 막혀 있다.

구약 인물 누구보다 큰 고난을 당한 욥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 더욱 잘 알게 되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면서 고난당하는 의미와 가치를 발견한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42:5).

고난의 터널을 지난 후에 귀로 듣기만 하던 주님을 친히 뵙는 경험을 하면서 신앙이 성장한다.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자로 다시 태어난다. 필터 프랭클 박사는 “의미를 지향하는 의지”로 인간을 보았고, “의미를 느끼는 자는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는다”고 했다. 유대인 교훈에 “하나님이 사람을 시험하시고 속속히 조사하실 때까지는 그 사람의 지위를 높이지 아니하신다. 그가 시험을 이기면 그를 높은 지위에 올리신다”고 했다.

시편 40편 시인도 기막힐 사연에서 답답함도 있었고 좌절과 실패도 있었지만 그런 중에 인생을 배웠고, 자신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더욱 간절히 부르짖고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들으시고 자신을 성장시키사 이제는 반석 위에 선 것처럼 뭔가 스스로 믿음으로 행할 수 있도록 든든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것을 3절에서 고백한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시40:3).

어거스틴이 최고의 대신학자요 성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방랑과 하나님께 대한 회의와 배신에 더해 모친 모니카가 18년간 부르짖은 아픔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섭리는 이해할 수 없지만
마지막으로 시인이 내린 결론적 핵심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위대한 꿈과 환상)는 결국 위대한 변화와 의미를 만들며 종국에는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시40:5).

시편 40편 5절처럼 언젠가는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사연을 이루고 기적을 베풀어서라도 놀라운 응답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말라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하신다. 고난을 고난으로만 여겨 꽃을 떨굴 것인가, 고난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여 열매 맺고 승리할 것인가.



/최종진 교수
前 서울신학대학교 총장
前 한국기독교학회장




위 글은 교회신문 <54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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